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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의 세멩고 보호구역에 오랑우탄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밀렵 등에서 구조된 오랑우탄에게 야생적응 훈련을 시켜 이곳에 방사한다.
쿠칭(말레이시아)/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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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생명
동물 거울실험과 일곱 ‘사람들’
▶ “자이라 박사, 내가 경고하는데 이 동물들은 뇌시술을 하는 실험대상에 불과하오. 행동연구를 하라고는 안 했소. 인간을 연구해봤자 우리의 본성을 아는 데 득될 게 없소. 인간은 숲속에서 먹을거리를 몽땅 먹어치우고는 농경지에 들어와서 농작물을 약탈했소. 모조리 없애는 게 상책이오. 우리의 생존이 달린 문제요.”(1968년 영화 <혹성탈출> 중에서 자이우스 과학부 장관의 말)
오랑우탄 거울실험을 진행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오랑우탄을 ‘원숭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다. ‘비인간인격체’ 칭호를 받은 오랑우탄 ‘보람’이 기분 나빠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오랑우탄과 원숭이의 진화적 거리는 인간과 오랑우탄의 거리보다도 멀다.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는 인간과 같은 ‘과’의 동물이다(학교 때 배운 ‘종-속-과-목-강-문-계’를 떠올려보라). 1400만년 전까지 네 동물과 우리는 하나였다. 같은 조상을 공유한 영장목 ‘사람과’(Hominidae)의 자식들이다. (안경원숭이, 일본원숭이 등 사람과 이외의 영장목 동물들을 일반적으로 원숭이라고 부르며 사람과 동물들과 구분한다.) 우리의 종 이름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에 붙는 ‘호모’(homo)를 그들에게 붙여도 하등 문제될 게 없다는 말이다. 이 사람과 동물에는 오랑우탄 두 종, 고릴라 두 종, 침팬지 한 종, 보노보 한 종, 인간 한 종 등 총 일곱 종이 속해 있다.
이 일곱 종 ‘사람들’의 차이는 드넓어 보이지만, 만약 우리와 영 다르게 생긴 문어가 본다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마치 서양사람들이 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분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곱 종 ‘사람들’은 많은 특성을 공유한다. 우선 원숭이와 달리 꼬리가 없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섯 개이며, 두 발로 서서 걸을 수 있고, 고도의 사회생활을 하고, 권력관계에 민감하다. 도구를 제작해 사용한다. 오랑우탄은 우산을 만들어 쓰고, 고릴라는 막대기로 강물의 깊이를 재고,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흰개미를 유인하고, 인간은 우주선을 띄운다.
유인원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의 풍경을 그린 1968년 영화 <혹성탈출>(찰턴 헤스턴이 주연한 이 시리즈의 원전. 최근 개봉된 시리즈가 프리퀄 격이다)은 우주비행사가 어느 한 별에 불시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별에는 네 개의 인종이 산다. 침팬지와 오랑우탄은 대개 행정가나 지식인이고, 고릴라는 강경한 군인 계급이다. 우주비행사를 도와주는 젊은 여성과학자 ‘자이라’는 침팬지이고, 유인원중심주의를 완고히 지키는 과학부 장관 ‘자이우스’는 오랑우탄이다. 야생에서 과일을 따 먹는 인간은 유인원들에게 포획돼 애완동물이나 실험용으로 이용된다. 인간중심주의를 완벽히 뒤집어놓은 기막힌 풍자 아닌가? 이때만 해도 ‘피그미침팬지’라고 불리며 침팬지의 아종으로 분류됐던 보노보는 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최신 분장 기술을 통해서 적어도 외양적으로는 세 유인원의 특성을 잘 담아냈다. 실제 야생에서 이 세 유인원의 비밀을 밝혀낸 건 세 젊은 여성과학자였다. 제인 구달의 침팬지, 다이앤 포시의 고릴라, 그리고 비루테 갈디카스의 오랑우탄.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의 제자들인 세 여성은 밀림에 들어가 동물에게 이름을 붙이고 교감하며 관찰했다. 동물과 상호작용해선 안 된다는 과학계의 금기와 함께 인간의 독보적인 위치도 깨졌다. 도구를 사용하고 죽은 아이를 애도하는 동물은 인간만이 아니었다. 현장 연구를 통해 이들이 처음 낸 책 <인간의 그늘에서>(침팬지), <안개 속의 고릴라>(고릴라), <에덴의 벌거숭이들>(원제 Reflections of Eden·오랑우탄)은 곧장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오랑우탄과 원숭이의 거리는인간-오랑우탄 사이보다 멀어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는 인간과 ‘과’ 같아 고독한 여행자 오랑우탄
채식주의자 고릴라
악마처럼 인간 닮은 침팬지
사랑에 미친 히피 보노보 최초 추리소설의 범죄자 오랑우탄은 나무 위의 고독한 여행자, 고릴라는 괴물로 오해받은 채식주의자, 침팬지는 인간을 반추하는 거울, 그리고 보노보는 섹스로 평화를 이루는 히피다. 1400만년 전, 진화의 몸통에서 가장 먼저 분기된 동물은 오랑우탄이었다. 아니, 오랑우탄만 아직 나무 위에 남아 살고 나머지는 땅 밑으로 내려왔다. 오랑우탄은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그것도 아주 천천히 정글의 차양부를 그네 타듯 건너다닌다. 사회생활을 하지만 침팬지나 인간처럼 몰려다니지 않는다. 조용히 서로 방문하고 즐기다 헤어진다. 오랑우탄이 단독자인 이유는 나무 위 세계의 한정적인 먹이 때문이다. 만약 침팬지나 고릴라처럼 수십마리씩 몰려다닌다면, 열매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으로 평화는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성성(猩猩)이’라고 불렸던 오랑우탄은 이제 동남아시아 보르네오 섬과 수마트라 섬만 서식지로 남았다. 인간을 제외하곤 아시아에 사는 유일한 대형영장류다. 에드가 앨런 포가 1841년 쓴 역사상 최초의 추리소설 <모르그가의 살인>은 이 동물의 고난을 은유하는 알레고리로도 읽힌다. 파리의 주택가에서 모녀가 처참하게 살해됐다. 집 안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돈은 훔쳐가지 않았다. 탐정 오귀스트 뒤팽은 이 괴이한 사건의 범인으로 오랑우탄을 지목한다. 동물원에 거액을 받고 팔리기 전 탈출한 것이다. 당시 오랑우탄은 서구 제국주의 관료와 상인들에 의해 포획돼 유럽의 동물원과 귀족의 애완동물로 공수되고 있었다. 고릴라는 영화 <킹콩>의 주인공처럼 가슴을 쿵쾅거리긴 하지만 나무열매와 잎사귀를 먹는 채식주의자다. 나중에 곤충을 먹는 게 확인됐지만, 생선을 먹는 사람도 광범위한 채식주의자로 인정해주는 게 인간 문화이고 게다가 원숭이를 사냥해 골을 파먹는 침팬지도 있지 않은가. 고릴라는 강고한 가족애로 뭉친 집단이 특징이다. 등에 은빛 털을 가진 알파 수컷 ‘실버백’을 중심으로 수컷 형제들과 암컷들 그리고 새끼들로 한 무리를 이루는데, 경쟁집단의 공격을 감시하는 보초를 두고 사시사철 흩어지지 않고 뭉쳐 다닌다. 고릴라는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등에서 벌어진 전쟁의 혼란 속에서 가장 많이 밀렵된 동물이고, 연구자 다이앤 포시 또한 1985년 자신의 캠프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2000년대부터는 에볼라바이러스가 고릴라의 개체 수를 감소시키고 있다. 같이 놀자던 침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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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Hominidae)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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