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8 18:28
수정 : 2005.10.19 17:36
|
지난 12일 오후 국립환경과학원의 한 실험실에서 황승률 유기물질분석연구과 연구사가 폐기물에 함유된 오염물질을 측정하기 위해 전처리작업을 하고 있다.
|
극미량 따라 허용-금지 갈리는 물질 늘어나는데
ㄱ기관 측정땐 “기준초과 50%” ㄴ기관은 “3%”
지난해 11월 경기 안성시 수도사업소는 관내 간이 상수도를 대상으로 4분기 수질검사를 실시했다. 이때 보개면 가율리 분토마을 수돗물에서 유해물질인 질산성질소가 9.9㎎/ℓ 검출됐다. 기준치인 10㎎/ℓ에 불과 0.1㎎/ℓ 못 미치는 높은 수치였다. 40여가구의 마을 주민들은 그 뒤로도 계속 간이 상수도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해오고 있다. 이 마을 김정태 이장은 “수치가 좀 높기는 해도 기준치를 안 넘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전남 나주시 금천면 원곡리에 있는 도축업체인 중앙축산은 전남도청이 벌인 폐수배출업소 점검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폐수를 내보냈다는 판정을 받았다. 수질분석 결과 총인(T-P)이 기준치(8㎎/ℓ) 보다 0.55㎎/ℓ 높게 나온 것이다. 중앙축산은 국가에 초과 배출한 오염물질의 농도와 양에 따라 환산되는 배출부과금 200만원을 냈다.
분토마을 주민들이 안심하고 수돗물을 마시는 것은 검사기관의 수질분석 결과를 믿기 때문이다. 중앙축산이 배출부과금을 낸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이런 수질분석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분석자 능력·숙련도가 측정 정확성 좌우=환경오염물질 가운데 어떤 장치에 넣기만 하면 자동판매기처럼 결과가 나오는 형태로 측정되는 것은 많지 않다. 분석이 비교적 쉬운 편이어서 시·군 보건소에 측정을 맡기고 있다는 수돗물 속 불소 함유량의 측정방법을 보자. 불소측정에는 모두 10가지의 시약을 준비해야 한다. 이 시약들 가운데는 단순히 물에 희석해서 만드는 것도 있지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들이 많다. 또 본격 측정을 위해서는 10단계가 넘는 전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전처리 과정에 대한 공정시험방법 설명 가운데는 “용액 수 방울을 지시약으로 하여”, “액이 엷은 홍색이 될 때까지 용액을 넣고” 등 애매한 부분들도 있어 분석자에 따라 다른 측정 결과가 나올 개연성도 높다. 또한 나온 결과를 정확히 해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장비 못지 않게 분석자의 능력과 숙련도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산업 발달에 따라 극미량으로도 인체와 환경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오염물질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환경오염물질의 분석과 측정에 대한 우리나라의 정도관리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간이 상수도의 법정 수질검사를 담당하는 시·군 보건소 등과 같이 검사기관 자체가 정도관리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는 경우는 극단적인 경우로 칠 수 있다. 문제는 정도관리 대상기관으로 지정돼 있는 검사기관들이더라도 이들이 검사하는 항목 가운데 실제 정도관리가 이뤄지는 항목 수가 극히 일부라는 점에 있다.
환경부가 공정시험방법을 고시한 9개 분야의 304개 항목 가운데 정도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5개 분야 27개 항목에 지나지 않는다. 52종에 이르는 대기환경보전법상 대기오염물질 가운데 50종이 정도관리를 받고 있지 않다. 여러가지 중금속과 환경호르몬 물질, 미세먼지 등이 모두 정도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이다. 각종 유해 폐기물에 함유된 오염물질 측정에 대해서는 납, 크롬, 구리 등 3가지 항목에 대해서만 정도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또한 정도관리 방법도 검사기관들에 일종의 시험문제격인 표준시료를 보내 이들이 오차범위 이내로 분석을 해내는지 점검하는데 그치고 있다. 검사용 표본을 채취하는 능력은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환경변화에 민감한 환경오염물질들의 특성상 표본 채취를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는 검사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 점이 고려되지 않는 검사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과학원의 측정기준연구과 직원 3명이 중심이 된 현재의 정도관리 총괄 조직의 역량과 지난해까지 1억7천만원에 불과했던 정도관리 예산으로는 530여개에 이르는 정도관리 대상기관을 상대로 이 정도만 해나가기도 버겁다”고 털어놨다.
정도관리 않고 “검출한계 이하” 믿어야하나=환경부는 얼마 전 “지난해 전국 총 3683개 지점에서 토양오염실태조사를 한 결과 1.7%인 61개 지점의 토양이 토양오염우려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준초과 지점에 대해서 오염토양 정화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환경부의 토양오염물질 측정에 대한 정도관리 실태를 알고 나면 정말 61곳만 우려하면 되는지, 또 환경부의 오염토양 정화대책이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시·도 보건환경연구원과 지방·유역환경청이 담당한 이 측정에서 ‘검출한계 이하’로 나왔다는 피시비 페놀 트리클로로에틸렌 등이 모두 국립환경과학원의 토양분야 정도관리 항목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이들 항목은 아직 토양오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고, 정도관리용 표준시료 제작 등에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들어 빼놓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환경연합 시민환경연구소가 강원도 지역의 52개 간이 상수도 수돗물을 받아 먹는물 수질검사의 국제인증기관인 수자원연구원에서 분석한 결과 간이 상수도 수질검사항목 14개(1개 항목은 선택) 가운데 1개 항목 이상 기준치를 초과한 것이 50%가 넘는 충격적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반면 지난해 강원도의 각 시·군 보건소들의 검사 결과를 통해 집계한 강원도 내 간이 상수도의 연 평균 수질기준 위반율은 3.14%에 그쳤다.
장재연 시민환경연구소장(아주대 교수)은 “측정 결과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면 측정의 정밀도와 정도관리 유무를 빼놓고는 이 격차를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면서 “정도관리가 이 정도라면 지하수, 대기 등 다른 분야 오염도조사 결과 발표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
‘정도관리’ 직접투입예산 1년에 2억 3천만원 겨우 5천만원 늘려 “반달곰보다 푸대접이오”
|
농촌 마을의 간이 상수도 집수정은 농약 등에 오염될 우려가 높은 논 옆에 위치한 것들이 많다. 경기 김포시 양촌면 구래1리 간이 상수도 집수정.
|
환경 분야의 검사기관들에 대한 정도관리가 중요한 것은 이들이 내놓는 결과가 국민들의 건강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측정 결과에 따라 국민들이 처벌을 받거나 면하기도 하며, 국가에 내는 벌과금의 액수가 달라지기도 한다.
나아가 부실한 정도관리는 정부에 대한 대내외 공신력을 떨어뜨리고, 국가의 환경정책까지 왜곡해 장기적으로 국가적으로도 큰 해악을 끼칠 수가 있다. 일반인들은 환경오염물질에 대한 측정치를 통해 현재 환경수준을 인식하는 것에 그치지만, 환경부 정책담당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환경정책을 설계하고 우선순위도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김삼권 국립환경과학원 환경측정기준부장은 “검사기관들이 환경오염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모든 환경정책의 기본으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시민환경연구소 장재연 소장은 “정확한 측정을 통해 현재의 환경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설계되는 환경정책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정확한 측정이 이뤄지도록 하는데 환경부 업무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제대로 된 환경정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법정 검사기관만이 아니라 정부의 환경관련 기초연구 용역을 수행하고 있는 각 대학과 연구기관의 검사실 등에까지 정도관리를 확대하는 것도 신중히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환경부가 관할 업무 가운데 정도관리에 두고 있는 비중을 감안해보면 가까운 시일 안에 이런 것을 모두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환경 측정분석의 국제화’를 내세워 국립환경과학원의 장비구입 예산으로 6억원을 배정하는 등 예산을 다소 늘렸지만, 정도관리에 직접 투입되는 예산은 1억7천만원에서 2억3천만원으로 늘어난 데 그쳤다. 이런 배려는 반달곰 복원사업과 같이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고, 따라서 홍보 효과가 높은 분야가 환경부에서 받고 있는 대접에 비하면 푸대접이라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