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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점보’는 1885년 9월15일 캐나다 세인트토머스에서 서커스를 마치고 철길을 건너다가 화물열차에 치여 숨진다. 점보의 죽음 뒤에 사람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점보 나이 스물네살 때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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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생명
코끼리 ‘점보’와 내셔널리즘
▶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기 코끼리 ‘덤보’(점보). 월트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이 코끼리는 19세기 대서양 양안에서 추앙받는 동물 스타 ‘점보’에서 따왔습니다. 사냥꾼에 의해 어미를 잃고 고아가 되어 런던동물원에 실려온 아프리카코끼리. 영국 어린이들의 반대 속에 미국에서 서커스 생활을 시작합니다. 영화에서처럼 점보가 날아다녔으면 어땠을까요. 그의 슬픈 이야기를 전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런던의 가장 큰 볼거리는 템스강 북쪽 리젠트 파크에 있는 런던동물원이었다. 세계 최초의 동물 스타가 거기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뒤뚱뒤뚱 걸어가면 타워브리지도 무너질 것 같은 덩치 큰 아프리카코끼리, ‘점보’였다. ‘점보 여객기’, ‘점보 버거’ 등 영어사전에 형용사를 등재한 수코끼리였다.
최초의 동물스타
점보가 19세기 영국의 상징으로 남은 이유는 ‘체험형 동물원’의 개척자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1865년 인도코끼리밖에 없었던 런던동물원에 아프리카코끼리가 입성한다는 소식은 런던 시민을 흥분케 했다. 아프리카코끼리는 인도코끼리에 비해 몸집이 컸다. 영국은 아프리카를 종단하며 식민지 경영에 박차를 가하던 시점이었고, 점보는 영국인 내면의 정치적 욕망을 상징하게 되었다.
런던동물원에서 점보는 케이지에 갇혀 전시되지 않았다. 이것은 관람객에게 동물과의 ‘교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관람객은 2펜스에 롤빵이나 비스킷을 사서 점보의 코에 쥐여줄 수 있었다.(‘코끼리 비스킷’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가장 큰 즐길거리는 점보의 두꺼운 등가죽에 올라타보는 것이었다. 빅토리아 왕족부터 노동자의 아들딸까지 점보를 타는 게 꿈이었다. 어린이 윈스턴 처칠이 점보의 등에 올랐다.
점보는 금세 동물 스타로 떠올랐지만, 그의 사생활은 감추어져 있었다. 불쌍한 코끼리는 밤마다 고개를 처박고 이상행동을 했다. <점보: 허가받지 않은 빅토리아 시대의 환호의 일대기>를 쓴 영국의 역사학자 존 서덜랜드는 2014년 캐나다 일간지 <토론토 스타> 인터뷰에서 “밤이 되면 불안에 빠진 점보는 상아를 땅에 대고 긁어댔다. 사실 점보는 동물원이라는 감옥에 갇힌 코끼리였다”고 말했다.
1860년 북동부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에서 사냥꾼에게 잡혔을 때, 점보는 1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코끼리였다. 서덜랜드는 ‘아기 코끼리 점보’가 엄마의 몸이 토막 나는 걸 봤을 거라고 추정한다. 코끼리 연구자 이언 더글러스해밀턴이 말한 ‘사냥 트라우마’를 겪었을 것이다. 사냥 과정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① 아기 코끼리가 도태 과정에서 어미와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다. ② (사냥꾼이) 겁에 질린 아기 코끼리를 가족의 사체에 묶어놓는다. ③ 죽은 코끼리 가족의 사체에서 상아, 고기 및 다른 부분을 떼어낸 뒤 고아 코끼리들을 트럭에 태워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감금한다.(G.A. 브래드쇼, <코끼리는 아프다>에서 재인용)
코끼리 사냥은 어미를 살해하고 상아를 채취하는 동안 어쩔 줄 몰라 하는 새끼를 산 채로 포획해 동물원에 넘김으로써 끝난다. 운송상 이점과 조련의 편리 때문에 동물원은 새끼 코끼리를 선호한다.
이렇게 옮겨진 점보는 런던의 어린이들과 함께 커갔다. 코끼리는 20대 때 ‘머스트’(musth)라고 불리는 특유의 성 성숙기가 찾아온다. 테스토스테론이 평소의 60배 이상 분비되면서, 인간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포악한 사춘기를 보낸다. 보수적 문화의 영국인들은 안전을 택하는 편이다. 가죽 채찍과 못이 달린 갈고리로 때려도 다루기 힘들자, 런던동물원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점보의 매각을 추진한다. 미국의 최대 동물서커스단 ‘바넘 앤 베일리’를 운영하는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이 1만파운드를 주고 사기로 한다.
영국 전역에서 점보 매각 반대운동이 벌어진다. 런던동물원에는 점보에게 과일, 케이크, 굴은 물론 다양한 술까지 ‘이별 선물’을 주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10만명의 아이들이 빅토리아 여왕에게 점보를 지켜 달라고 편지를 썼다. 신흥 근대국가인 미국이 힘을 키우며 영국을 쫓아오던 시절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동물사(動物史)를 연구한 해리엇 리트보는 점보에 투사된 영국인들의 열광적인 내셔널리즘을 묘사한다.
“점보를 타본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은 점보를 미국에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대중적인 공분이 이어졌다. (점보의 매각은) ‘동물을 사랑하는 영국인들의 수치’라는 항의 편지가 쇄도했고,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10만파운드를 주고 계약을 해지하자는 여론을 조성하고 있었다.”(1987년 <동물 자산>)
비스킷 주기와 코끼리 타기체험형 동물원의 원조
‘런던 스타’로 등극한 점보는
미국 서커스단에 팔려갔다 “미국에 빼앗길 수 없다”
대중적 공분 있었지만
하루 4ℓ 술 마시던 코끼리
3년 뒤 열차에 치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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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제작된 포스터. 점보를 ‘영국의 자존심’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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