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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0 17:41 수정 : 2005.12.21 13:58

신라 무덤에서 장식용 날개 대량 출토

비단벌레, 신라 무덤에서 장식용 날개 대량 출토

비단벌레는 곤충 가운데서도 특히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예쁘고 화려한 종이다. 몸길이가 4cm에 이를 정도로 큰 덩치와 함께 금록색의 등판에는 붉은 줄무늬가 몸을 따라서 한 쌍이 배열되어 있을 뿐 아니라 광택까지 나, 그의 자태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비단벌레가 유명한 것은 단순히 미적 기준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고대 문화 속에 한 끈을 부여잡고 있기 때문이다. 5~6세기 경에 이미 신라인들은 비단벌레의 화려한 딱지날개를 이용하여 금속장식 공예에 이용하였을 뿐 아니라 옷을 아름답게 만드는 장식품으로도 이용하였다. 그 같은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21년에 발굴된 금관총에서 비단벌레의 딱지날개가 장식된 의류 흔적과 마구 장식들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고구려 동명왕릉 능원구역에 있는 7호 무덤에서 ‘해뚫음무늬금동장식’도 나왔고, 비교적 비단벌레 장식이 많이 보존된 황남대총의 안교장식에 이르기까지 무덤의 부장품들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은 단순히 비단벌레의 미적 가치만 높게 산 것일까? 미적인 면을 포함한 또다른 측면이 그 기저에 깔려있다. 무덤 속의 화려한 부장품은 죽은 이가 사후세계에서도 현세처럼 행복하기를 바라는 영생의 의미였다. 그 단초로서 비단벌레가 쓰였다고 볼 수 있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가 보석처럼 영롱함이 오래 간직된다는 것을 당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거기에 비단벌레에 대한 주술적인 믿음이 배가되어 죽은 이가 영원히 죽지 않고 잘 지내기를 기원하는 상징이 되었을 것이다.

비단벌레를 장식의 부속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수천 마리이상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이 땅에서 비단벌레의 딱지날개를 다 조달했다면, 최소한 삼국시대에는 비단벌레가 풍부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들의 존재는 가물에 콩 나듯이 드문드문 확인되다가, 최근에야 극소수지만 집단 분포하는 장소가 확인되었다. 일본의 자료에 따르면, 환경조건이 좋은 곳에서는 2그루의 나무에서 44마리의 비단벌레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서식할 마땅한 장소만 있다면 많은 개체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비단벌레는 팽나무, 벚나무, 가시나무 같은 나무들을 좋아하는데, 노쇠하고 큰 나무를 더 좋아한다. 애벌레가 이들 나무 속에서 목질부를 먹고산다. 특히, 나무 속에서 영양분이 이동하는 물관부를 먹어 들어가므로 애벌레가 들어간 나뭇가지는 점차 쇠약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비단벌레의 삶터로 유지될 수 있기 위해서는 먹이와 삶터를 제공하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 곳이 깊은 숲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마을과 그 주변의 숲에 비단벌레가 살았었다.

박해철 농업과학기술원 연구사 culent@chol.com

다행히 아직 남부 해안 지역에는 방풍림으로 심어놓은 팽나무와 같은 나무들의 군락이 남아있다. 이제라도 노거수군락이나 마을숲을 보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비단벌레 때문만이 아니라, 이 종을 깃대로 내세워 마을의 풍수와 문화적 상징성을 모두 껴안기 위해서 말이다.

좀 여러 곳에서 늙은 나무 위를 자유로이 날아오르는 화려한 비단벌레의 날갯짓을 볼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비단벌레처럼 문화적 상징성이 큰 생물자원 연구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이뤄져 자세한 생태와 분포가 밝혀지고, 그것을 통하여 전통문화도 재현해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올 수 있기를 바래본다.

박해철 농업과학기술원 연구사 culent@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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