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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래 / 한겨레 블로그 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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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어느날 나는 강원래의 다섯번째 시험관 시술이 실패했다는 뉴스를 접했고, 공교롭게도 같은 날 그가 휠체어를 타고 댄스가수로 복귀한다는 기사를 함께 접했다. 그때 느낀 뭉클한 감동을 [클론의 복귀. 희망의 복귀]란 제목의 글로 한겨레 토론방에 포스팅했다. 하지만 돌아온 강원래에 대해 간간히 전해지는 소식은 과거처럼 유쾌한 것 만은 아니었다. 어딘지 여유가 없어지고 예민하고 날카로우며 신경질적인 모습이 여과 없이 노출되어 시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의 여유없음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할 만큼, 그가 겪고 있는 시련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억지로 미소지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연구가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었을 때, 그가 황교수의 연구를 후원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장애인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만큼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또 비록 실낱같은 희망일지라도 황교수의 연구가 성과를 이루어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랬을 것이다. 기사 [강원래 "내 표정을 봐 춤추고 있잖아"] 19일 보도된 경향신문 기사 [강원래. "내 표정을 봐 춤추고 있잖아"]는 이런 이유로 관심을 끌었다. ['장애인인식바로잡기연구소' 발기 외치는 '쿵따리 샤바라']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기사는 기자가 질문하고 당사자가 답하는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기사 내용은 제목처럼 희망적이지 않았다.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졸지에 장애인이 된 당사자가 8년이란 짧지않은 기간 동안 느꼈던 고통과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장애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안쓰러웠고, 기사 곳곳에서 여전히 '그의 고통은 진행형'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8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장애인의 문제를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타인의 편견 때문이었다. 그는 "응답자의 80%가 장애인을 불쌍하다고 인식하고 있어요. 장애인은 비장애인들과 기능, 능력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불쌍한 존재는 아니거든요. "라고 말한다. 그가 사고 후 앨범 발매와 관련한 발언은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잘 드러낸다. "사고 얼마 후 앨범을 내자고 성화였어요. 지금 앨범을 내면 대박이라는 거죠. 갈등이 심했어요. 그런데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제가 다친 게 앨범을 팔아먹기 위해 '쇼'를 하는 거래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 그는 이 말을 듣고 앨범을 낼 것을 포기하게 되었고, 앨범을 내자고 종용한 사람들은 자기로부터 멀어져 갔고, 자신 또한 "사람들로 부터 멀어져 갔다."고 대답했다. "스타 강원래가 아닌 보통사람 강원래로서 장애를 극복하셨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발끈 했다. "무슨 극복? 뭘 극복한다는 거예요? 휠체어를 버리고 벌떡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극복이 됩니까? 이렇게 사는 거지요." 이 대목을 보는 순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와 관련한 기억이 떠 올랐다. 당시 이 영화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문제를 잘 읽어낸 수작으로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화제작이었지만, 시사회에 초대된 한 장애인의 날카로운 발언이 편견에 빠져 있는 나의 정수리를 내려쳤었기 때문이었다. 그 장애인은 영화에서 공주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장애를 벗어던지고 정상인이 되어 설경구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상상을 하는 장면]을 보고 "장애인은 정상인이 되는 것을 결코 꿈꾸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말 속에는 '장애인이 장애를 안고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항변'이 들어 있었다. 그는 영화가 설경구가 공주를 성폭행한 범인으로 오해 받아 구속 수감된 것으로 결말지어진 것에 대해서도 "장애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억울하게 감옥에 가는 것을 방치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며 영화의 어이없는 결말이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무지 내지는 편견의 산물 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당시 나는 이와 관련한 감상문을 블로그에 계제했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화 [오아시스]가 장애인의 문제를 사회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킨 좋은 영화라고 평가받고 있는 현실이 씁쓸 할 뿐 이다. 강원래가 기사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첫번째는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가 언급한 것 처럼 '장애인은 단시 신체의 일부가 불편한 사람들인것이지 동정의 대상이 아니란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 관련 시스탬이 자선이나 구호의 차원이 아닌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동하는 데 불편함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두번째는 타인이 겪는 불행을 남의 일 이라고해서 너무 쉽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기사를 통해 '자신 들의 음악이 음악성이 없다'거나, '사고 후 받은 20억원의 보상금이 너무 많다'는 세간의 수군거림이나, 스스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데, 이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은 계제된 기사에 강원래 자신이 직접 작성한 리플을 통해 잘 드러내고 있다. [장애를 가지면서 오랜시간 부정적으로 세상을 살았지만... 이제 조금씩 긍적적으로 변해볼려고 노력합니다. 실수도 하고 가끔 좌절도 하는 제게 질책도 좋지만요~ 조금만 마을을 열고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그게 제겐 더 힘이 된답니다..^^] (강원래의 리플) 엉뚱하게 해석 보도된 강원래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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