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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여의사’ 김옥경(78)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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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쓸게 뭐 있나? 다 가족같은 환자들인데!
“정상이시구만요. 이제 약도 필요없어요!” ‘할머니 의사’ 김옥경(78) 원장은 10일 오후 정근식(76) 할아버지의 혈압이 정상치로 나오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김 원장은 이어 혈압계를 내려놓고는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정 할아버지와 날씨며 사는 얘기를 도란도란 나눴다. 김 원장이 직접 운영하는 전남 강진군 병영면 삼인리 후생의원은 항생제를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보건복지부 발표에서 ‘감기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 0% 의원’으로 나온 13곳 중의 하나다. 김 원장은 “환자들이 대부분 인근에 사는 60~80대 농촌 노인들이어서 항생제를 많이 쓸 일이 없을 뿐인데 괜한 소란을 피우는 것 같아 민망하다”고 말했다. 그는 “항생제를 꼭 써야 할 병에는 처방하는 것이 맞고 나도 가끔 쓴다”며 “그냥 예전부터 내성을 키우는 항생제 쓰는 것을 싫어했다”고만 말했다.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말에 표정이 밝아진 정씨는 “항생제 처방을 너무 많이 하는 병원은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맞다”며 “서민적이고 좋은 약을 쓰는 것으로 소문이 난 ‘우리 원장님’에게는 상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주(5)와 함께 의원에 온 박승해(70·신지리)씨는 “원장님이 이물없고(편하고), 좋은 약을 써주싱께 고맙다”고 맞장구를 쳤다. 지금의 고려대 의과대 전신인 경성여자의과전문학교를 졸업(1950년)하고 보건소 등에서 근무하다가 1967년 서울로 올라가 경기도 능곡에서 ‘후생의원’을 열어 20여년 동안 환자를 돌봤다. 한때 무용가를 꿈꿨을 정도로 낭만적인 김 원장은 95년 귀향해 같은 이름의 의원을 열었다. “살면서 가장 존경했던 아버지의 고향에서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하루 보통 20~30명의 환자를 보지만, 오일장이 낀 날엔 50~60명이 찾아와 제법 북적거린다. “거의 단골이지요. 노인 환자들은 친구들이나 마찬가지지 ….” 그는 지금도 안경을 끼지 않고 직접 처방전을 쓴다. 긴급 외상 환자가 오면 직접 상처를 꿰맬 정도로 정정하다. 자녀를 따라 광주 등 외지로 이사한 노인들이 가끔 김 원장에게 진료받기 위해 찾아온다.김 원장은 “여름 장날 잘 다듬은 나물과 수박 반통을 들고 ‘고맙다’며 건네는 인심이 바로 시골 사는 맛”이라며 “진작에 내려오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했다. 강진/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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