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21 21:38
수정 : 2006.02.21 21:38
이유없이 아픈 ‘긴장성 근육통 증후군’
무의식 속 분노 찾아내 마음으로 치료
허리나 다리 통증을 경험한 적이 없는 98명에게 자기공명영상(엠아르아이) 촬영을 한 결과 36%만 모든 척추 디스크(추간판)가 정상이었다. 52%는 한 개 이상의 디스크에 붓는 증세가 있었고, 27%는 디스크 돌출, 1%는 디스크 탈출 증세를 보였지만 통증은 없었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 1994년
통증 발생이 신체 구조상의 이상과 상관관계가 없음을 시사하는 의학 논문이지만 미국 뉴욕의대 러스크재활의학연구소 통증전문의 존 사노 박사에 의해 그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최근 방영된 <한국방송>의 특집다큐멘터리 ‘마음’ 6부작의 제3편 ‘무의식에 새겨진 마음을 깨우다’에 소개되기도 한 사노 박사는 “통증의 근본 원인은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분노”라며 “그 분노를 찾아내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통증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통증은 무의식 속에 쌓여있는 분노에서 비롯된 심인성 질환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술이나 약물, 물리치료 등을 동원해 신체 구조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통증은 일시적으로 완화되거나 사라질 뿐, 같은 부위가 아니더라도 다른 부위로 옮아가 재발하기 쉽다는 게 그의 30여년 임상경험의 귀결이다.
그는 지난 1970년대부터 심신의학의 일종인 ‘긴장성 근육통 증후군’(TMS)이라는 개념을 주창하고 그 개념을 적용한 교육 프로그램(지식요법)을 개발해 1만명 이상의 통증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가 쓴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통증이 사라졌다는 사람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04년 5월23일치에서 “사노 박사는 매주 통증환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열 때마다 부모의 이혼, 어릴 적 성학대, 직장 고민거리 등에 대한 분노를 자기도 모르게 억압하면 신체가 스트레스를 받아 (근육, 신경, 인대 등에) 가벼운 산소 결핍증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이 근골격계에 근육통, 신경장애, 마비와 같은 질환들(TMS)을 일으킨다고 설명한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 통증환자들에게 살아오면서 화를 꾹꾹 참았던 경우를 목록으로 작성케 한 뒤 매일 조용한 곳에 앉아서 목록에 오른 한가지 항목에 대해 15분 동안 명상을 하도록 함으로써 통증 치료 효과를 낸다고 한다.
그는 “무의식적인 분노가 있다는 걸 깨닫고 그 분노의 원인을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 치료의 주된 과정”이라며 “통증은 신체 문제가 아니므로 수술, 물리치료 등 어떤 신체적인 처방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통증의 심리적 측면을 깨닫고 통증을 유발한 분노의 원인을 찾아내 차분하게 생각해볼 시간을 가지면 통증이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을 주목한 하세가와 준시 일본 갤럽치료원 원장은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치료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이것이 (사노 박사의) 통증치료와 예방의 핵심”이라며 “정통 의학계에 대한 도전이지만 받아들여지면 의료비가 크게 절감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노 박사는 “긴장성 근육통 증후군을 앓기 쉬운, 즉 통증을 유발할 정도로 심각한 분노를 무의식 속에 쌓아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가 크거나, 완벽하고 착해지려는 욕구가 강하거나, 직장과 가정 등의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긴장성 근육통증후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마저 바꿀 필요도 없고 바꾸는 게 가능하지도 않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인간 내면에 깊이 숨겨진 감정을 이해하는 정신분석조차도 성격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분노 같은 감정은 우리를 덜 위협하게 된다고 한다. 또 분노가 결코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생성된다고 하더라도 일단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 그 날카로운 가시는 어느 정도 무뎌져 덜 위협적으로 변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허리, 목, 어깨, 팔, 다리 등에서 원인 모를 만성통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 ‘읽는 약’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책을 읽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의 책은 현재 <통증혁명>(국일미디어 펴냄)과
(승산 펴냄) 등 두 권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시판중이다.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
“통증도 사랑의 상처 아물듯 시간이 약” ‘긴장성 근육통 증후군 이론’ 소개한 신승철 박사
“허리와 목 디스크 수술률이 매우 높은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춰 신체에 나타난 통증의 정신적 측면을 강조한 사노 박사의 ‘긴장성 근육통 증후군’(TMS) 이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존 사노 박사의 을 한국어로 옮긴 신승철 정신과 전문의는 “사노 박사의 통증이론은 통증의 대부분이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임상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 주변에서도 예를 들자면, 허리를 비롯해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고 호소해온 사람이 해외여행만 가면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날아다니거나,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해도 증상이 일시적으로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사노 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대부분의 만성통증은 무의식 속에 억제된 분노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통증을 치료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면서 “그것은 사랑의 상처가 아물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만성통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무의식 속에 있는 분노의 정체를 깨달을 뒤 회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안영진 기자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