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26 14:26
수정 : 2006.05.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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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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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숙제하듯 하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재미가 없으니 여자의 질, 자궁, 나팔관이 흥분을 하지 않고 그러면 들어온 정자를 마음껏 자궁 속으로 빨아들일 수가 없다.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흔한 에피소드 하나. 바쁜 남편 꼬드겨 ‘합궁일’을 잡아서, 아내는 대낮부터 목욕재계에 평소와 다른 예쁜 속옷까지 입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정작 남편은 중요한 약속이 있다면서 고주망태가 되어 새벽녘에야 들어왔다. 화난 아내의 한 마디, “에고,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몇 년 동안 불임클리닉에서 환자를 진료하면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났다. 그래서 내가 환자들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 가운데 하나도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였다. 어떤 환자들은 그냥 웃어넘기지만 부부에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실제로 불임클리닉에 다니는 부부들 가운데에는 치료를 받으며 부부관계가 오히려 뜸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병원에 가서 ‘그날’을 잡아오면 그 날만 관계를 하고 다른 날은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숙제만 하고 다른 공부는 안 하는 열등생과 똑같은 것 아닌가.
이런 일들이 오래 묵은(?) 부부나 원래 관계가 없었던 부부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멀쩡히 잘 하다가 불임이라는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열정들이 없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불임이란 진단이 뭐 별 거 있나. 불임은 “부부가 1년 동안 피임을 하지 않고 충분한 성관계를 했는데도 임신이 안 되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충분한’이란 말이다. 정말 묻고 싶다. 충분히 열심히 했는지에 대해.
연애할 때는 피임을 해도 덜커덕 생겨버리는 아기가 왜 결혼을 하고 나중에 아기를 가지려고 하면 안 생기는지 신기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다. 섹스를 숙제하듯이 하면, 이게 재미있을 리가 없다. 재미가 없으니 여자의 질, 자궁, 나팔관이 흥분을 하지 않고 그러면 들어온 정자를 마음껏 자궁 속으로 빨아들일 수가 없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우선 하고 싶지가 않다. 그리고 심한 경우는 발기도 사정도 아무것도 안 된다. 사정이 되더라도 조금 된다. ‘불임’이라는 진단이 이렇게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남자 쪽이 문제든 여자 쪽이 문제든 부부 모두 상처받고 서로 미안해지고 서로 조심스러워진다.
불임이 아니다. 단지 임신이 남들 보다 좀 늦고, 남들 보다 좀 어려울 뿐이다. 절대로 섹스만으로 임신이 안 되는 경우 시험관아기라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병원에서 오라 가라 하는 날에만 맞춰서 달력만 보며 생활하지 말자.
시험관아기를 하더라도 엄마와 아빠의 성생활은 중요하다. 충분한 성생활은 건강한 난자와 정자를 만든다. 특히 정자는 신선한 것이 최고다. 무슨 말이냐면 오래 관계를 안 하면 정자의 양은 좀 늘어날 수 있지만 운동성도 떨어지고 기형도 늘어난다. 충분한 성생활은 여자의 난소와 자궁에도 활력을 주기 때문에 힘든 시험관아기 시술과정을 견디고 10개월 동안 아기를 길러내는 힘을 준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 하늘엔 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달도 있고 운이 좋으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유성을 볼 수도 있다.
이희영 서초쉬즈영성한의원원장 www.sh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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