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17 16:38
수정 : 2006.11.1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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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폭력실태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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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폭력’ 사슬의 마지막 피해자는?
선배→후배 폭력관행 이어져
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선후배 의사들 사이 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그 피해가 환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우선, 환자 앞에서 벌어지는 의사들의 폭언과 폭력은 당장의 치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폭력과 폭언을 지켜본 환자는 ‘의사선생님’을 믿지 못하고, 피해 의사들은 자신의 인격과 능력을 불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전공의들은 “환자들 앞에서 폭언이나 폭행을 당하고 나면 환자를 더 이상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폭력에 반발하거나 좌절해 수련을 포기하는 전공의들도 있다.
의료현장 폭력 실태를 조사·연구한 임기영 아주대의료원 정신과 교수는 “회진할 때 환자, 보호자 앞에서 (교수나 선배 의사들이 후배 의사에게) 폭언을 일삼으면 환자들이 해당 전공의를 못 믿는 것은 물론, 병원 전체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며 “치료 효과도 당연히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환자 및 보호자도 ‘병원이 환자를 뭐로 보기에 내 앞에서 이런 행동이 벌어지느냐’는 당혹스러움과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팀의 조사에선 폭언을 한 적이 있는 의사들 가운데 88.2%가 이전에 자신도 폭언의 피해자였다고 답했다. 폭력의 관행은 아래 연차로 ‘전염’되며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전공의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식된 ‘폭력성’을 환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성낙 의료현장폭력추방추진위원회 위원장(가천의대 총장)은 “폭력을 당한 뒤 환자에게 바로 분풀이하는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내재한 폭력성을 환자들에게 표출할 수 있다”며 “예를 들면 환자 의견은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진료 지침을 결정하는 권위적 태도를 보이거나, 환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게되는 등의 행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도 “전공의 폭력은, 당한 사람에게 권위주의와 냉소를 심어주고, 신체적 공격 성향도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전공의 수련 과정의 폭력 등 비인격적 대우는 과다한 업무 등 열악한 수련 환경과 함께, 개업 뒤 소득 등에 대한 보상심리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한 개업의는 “혹독한 환경이었던 전공의 과정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며 “그 때 폭언 등을 당해가면서, 잠도 못 자가면서 생활했는데, 개업해서는 소득으로나마 보상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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