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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21 19:35 수정 : 2007.05.21 20:00

원주의료생협에서 만든 밝음의원과 밝은한의원은 병을 고치기에 앞서 발병을 막고자 노력하고 병을 낳는 사회 구조까지 바꾸려 애쓰는 ‘민주의료기관’을 지향한다. 최혁진 원주의료생협 기획실장(맨 왼쪽), 양창모 밝음의원 원장(왼쪽에서 네 번째), 정현우 밝음한의원 원장(왼쪽에서 여섯 번째)이 간호사, 자원봉사자, 간병사업단 일꾼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권복기 기자

조합원 출자 원주 의료생협 밝음의원·한의원 ‘의료 실험’
‘소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치기’ 예방 우선
사랑방 열고 한솥밥 먹으며 ‘건강 수다’

원주시 중앙동에 가면 특별한 병원이 있다. 밝음의원과 밝음한의원. 9일 오후5시.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입구 쪽 벽에 걸린 ‘환자의 권리 장전’이 먼저 눈에 띈다.

문 열고 들어서면 벽에 ‘환자의 권리장전’

모든 환자는 담당의료진으로부터 자신의 질병에 관한 현재의 상태, 치료계획 및 예후에 관한 설명을 들을 권리와 검사자료를 요구하고 시행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 뼈대다.

권리 장전뿐 아니라 진료 모습도 여느 병원과 다르다. 대개의 병의원이나 한의원에서는 의료진이 환자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밝음의원 양창모(37) 원장과 밝음한의원 정현우(33) 원장은 적어도 20~30분씩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 시시콜콜한 집안 얘기도 들어주고 먼저 묻기도 한다.

20~30분 대화…시시콜콜한 집안 얘기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밝음의원과 밝음한의원은 1200명의 조합원들이 출자해 만든 원주의료생활협동조합이 세웠다. 이곳을 찾는 환자들인 조합원이 두 의료 기관의 실질적인 주인인 셈이다. 의료진들은 원주의료생협을 이끌어가는 주체이자 의료생협에 의해 고용된 직원이다.

원장 월급 다른 병원 절반도 안돼

환자가 주인이고 의료진은 월급을 받고 일하기 때문에 이 병원과 한의원은 수익을 높이기 위해 과잉진료나 불필요한 처방을 할 이유가 없다. 두 원장은 여느 병원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는 월급에도 ‘건강한 마을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의료생협에 참여했기에 더욱 원칙적이다.

항생제나 주사 처방은 최소한…한약도 “그냥 가세요”

실제 양 원장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항생제나 주사제 처방을 하지 않는다. 최혁진 원주의료생협 기획실장은 “지난해 밝음의원의 항생제 처방 비율은 10% 이하로 원주 지역 평균치인 60%에 비해 아주 낮다”고 말했다. 한의원도 비슷한 원칙 아래 운영된다. 정 원장도 침구나 다양한 치료를 위주로 하고 한약을 지으러 와도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으면 그냥 돌려보낸다.

지금은 그런 이들이 거의 없지만 처음에는 조합원들의 항의가 많았다. 똑같이 진료비를 내는데 다른 병원과 달리 왜 항생제 처방을 해주지 않냐, 병이 잘 낫지 않는다, 내 돈 내고 내가 약 지어 먹겠다는데 왜 한약을 지어주지 않느냐 등등. 그때마다 의료진과 원주의료생협 상근자들은 항생제 등 약품 남용의 문제점과 의료생협이 지향하는 바 등에 대해 진땀을 흘리며 설명을 해야 했다.

일 끝나면 왕진, 왕복 3시간 걸리기도

밝음 의원과 한의원은 환자를 찾아가는 일도 많이 한다. 일주일에 서너 차례, 많을 경우는 일주일 내내 왕진이 이뤄진다. 저녁 6시 진료를 끝낸 뒤 왕복 3시간 걸리는 먼 곳까지도 찾아간다. 이곳의 의료진들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원주의료생협은 간병사업단도 만들었다. 이 사업단은 두 가지 구실을 한다. 가난한 이들의 일자리 창출과 혼자 사는 어르신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의 간병사업이다. 최 실장은 “가난해서 병을 얻는 분들도 있다”며 “그 분들에게는 최고의 치료가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요가·산악회 등 소모임…식당이자 경로당이며 사랑방

치료보다 예방을 중시하는 이곳에서는 ‘밝음 요가교실’, ‘웃기는 사랑방, ‘쌈지모임’ ‘거북이산악회’ 등 건강 유지를 위한 여러 가지 소모임도 운영되고 있다. 또 한달에 한번씩 의료생협에서 건강식사모임을 열어 함께 밥을 해먹으며 건강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수다도 떤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병원이자 식당이자 경로당이며 사랑방이다.

양 원장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개원이나 하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환자와 의사가 모두 행복한 의료제도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원주/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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