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02 18:13
수정 : 2007.07.0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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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일의 건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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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일의 건강이야기 /
밥솥을 불에 올려놓은 채 집안에서 잠자던 주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경찰은 밥이 타면서 생긴 연기가 집에 자욱했던 점으로 미뤄 이 여성이 질식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음식 연기가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끼칠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사례다.
음식을 조리할 때 생기는 연기에는 두통, 알레르기, 호흡기 질환, 암 등을 유발하는 물질이 포함돼 있다. 특히 기름에 튀기거나 불에 구울 때 생기는 연기에는 발암물질이 다량 들어 있다. 1986년 이후 대만과 중국에서 여성 암 사망률 1위는 줄곧 폐암이 차지했는데, 학자들은 튀김음식이 많은 이 지역의 식습관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대만, 중국, 홍콩, 싱가포르에 사는 중국계 비흡연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름에 튀기는 음식을 조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폐암에 2~4배 많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튀김 연기에 발암물질이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발암물질 가운데는 ‘다환성방향족탄화수소’(PAH)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이 물질은 세포에 해로운 활성 산소의 양을 늘리고, 유전자 손상을 가져와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돼 있다.
생선을 튀길 때 생기는 휘발성 알데히드 물질도 암 발생을 부추긴다. 또 기름 연기는 폐 조직의 면역기능을 떨어뜨려 여러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도 크게 한다. 붉은색 육류를 기름에 튀길 때 생기는 연기에는 상당량의 콜레스테롤 성분도 들어 있다. 육류를 직접 섭취하지 않더라도 연기를 통해 콜레스테롤이 몸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얘기다. 기름 연기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기름의 종류와 상관이 없다. 유익한 것으로 알려진 올리브기름의 연기도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음식 연기의 피해를 줄이려면 음식을 조리할 때 반드시 환기 장치를 쓰도록 하고, 창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조리 뒤에도 한동안 환기시설을 작동하고 창문을 열어 둬 공기 중에 남아 있는 유해물질이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해야 한다. 아예 음식을 튀기거나 굽기보다는 찌거나 삶는 방식으로 요리 습관을 바꾸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특히 어린이가 실내에 있으면 튀김 요리를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어린이는 기름 연기에 든 유해물질을 해독하는 능력이 어른보다 떨어져 더 큰 피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우리나라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여성 암 사망률에서 폐암이 2위를 차지했다. 중국계 여성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흡연 여성이 음식 조리 연기로 폐암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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