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09 19:10
수정 : 2007.07.0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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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가정의학 및 예방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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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건강보험심평원장 인터뷰
질병에 대처하는 정보는 인터넷과 언론, 책 등에 널려 있다. 이름난 의사를 소개하는 정보도 넘쳐 난다. 그렇지만 ‘정보의 바다’에선 헤매기가 십상이다. 정작 어떤 정보를 믿고 따라야 할지는 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들에게 필요하면서 올바른 정보, 즉 ‘맞춤형 정보’는 여전히 부족한 게 ‘정보 홍수 시대’의 역설이다. 의료현황과 관련한 지금까지 공인된 객관적 정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보험 진료비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통계다. 심평원의 이런 정보 공개는 9일 기획예산처 주최로 열린 ‘공공기관혁신 기관장 토론회’에서 우수 사례로 발표됐다. 정보공개로 환자들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의 진료에도 변화를 준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김창엽(사진·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가정의학 및 예방의학 전문의) 심평원장을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실에 만나 의료기관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균형잡힌 판단을 할 수 없는 정보가 문제
■ 흔히 정보의 홍수라고 말한다. 인터넷, 언론 등에 나오는 건강에 관한 통계, 정보 등은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장수 연구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일찍 죽은 사람이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 뭐냐? 반대로 장수한 사람이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답은 둘 다 ‘밥’이다. 오래 살거나 또는 일찍 숨진 사람만 대상으로 조사하다보면 어떤 원인이 장수에 보탬이 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이런 이치를 생각할 때 따져 봐야 할 정보는 바로 병원 한 곳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예를 들면 어느 병원 한 곳을 조사한 결과 어떤 질환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었거나 치료 성공률이 좋아졌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실제 질병 발생은 비슷한데 관련 진단법이 좋아졌거나, 의료기관의 유치 능력이 좋아진 때문일 수도 있다.
■ 언론이 제공하는 의학 정보는 과장이 있다는 비판도 많은데?
=과장이 심한 기사도 있겠지만, 환자들이나 독자들 입장에서 균형 잡힌 판단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예를 들어 뇌종양의 증상 가운데 하나가 두통이다. 언론에서 ‘가벼운 두통이라도 뇌종양일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마세요’라고 보도하면 독자들은 갑자기 자신의 두통이 뇌종양에서 비롯한 것으로 의심한다. 하지만 신경과 전문의 등 의사들은 그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제대로 된 정보가 없다보니 환자들은 꼭 중병이 아닌데도 서울의 대형병원들로 몰린다. 심지어 수술을 많이 하면 의료 수준도 높은 것처럼 전하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수술 많이 한다고 해서 꼭 진료의 질이 높은 것은 아니다. 병상 수나 의사 수가 많으면 그만큼 수술 건수가 많아진다. 또 환자를 유치하는 능력이 좋거나 적정한 수준의 의료를 하지 않고 환자들의 구미에 맞게 의료를 상업화해도 환자들은 는다. 제대로 된 정보는 치료 받은 환자의 나이, 질병의 진행 정도 등을 객관적으로 비교 평가해야만 얻을 수 있다.
미국은 수술 의사이름·생존·사망률 공개
■ 환자의 특성을 고려해 평가한 자료는 어떻게 구할 수 있나? 예를 들어 암 수술 성공률, 뇌졸중 회복률 등에 관한 자료는?
=환자들이 요구하는 정보 생산에 많은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정보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이 뒤늦은 편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정보 생산을 위한 투자가 소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의료시설이나 의료진들에 대한 여러 평가가 진행 중이다. 순차적으로 정보 공개할 계획이다. 우선, 각 의료기관 별로 뇌졸중과 관상동맥질환의 진료 질을 평가해 내년 8월쯤에 공개한다. 이를테면 뇌졸중의 후유증 예방에 있어 가장 큰 관건인 혈전용해제 투여 등에 대한 각 의료기관의 실태를 평가·분석하고 있다. 이어 폐암·관상동맥질환·위암·췌장암·조혈모세포이식 수술 등 8개 중병과 수술 등도 평가해 공개할 작정이다.
■ 선진국의 질병 의료의 질에 대한 정보와 평가 현실은 어떤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화됐다. 미국 뉴욕 주 보건부의 자료를 보면 심혈관수술 등에 대해 수술 의사 이름과 생존율, 사망률 등이 공개돼 있다. 펜실베이니아 등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자료를 공개한다. 이런 자료는 환자의 나이, 중증도 등을 고려해 작성된 것이다.
■ 현재 심평원이 공개하는 진료 정보는 어떤 것들이 있나?
=병·의원 외래에서 가장 흔한 질환이 상기도질환, 즉 감기에 대한 항생제 및 주사제 처방률이다. 감기는 대부분 바이러스 질환이라 항생제는 필요 없고 주사제 역시 먹는 약으로 충분하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도, 그동안 환자는 의료기관별 항생제 처방률 등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현재는 심평원 홈페이지(hira.or.kr)를 통해 2005~2006년 평가 결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의료기관의 위치까지 확인할 수 있어 항생제 처방비율에 따라 병·의원을 선택할 수 있다. 이 평가가 공개된 뒤 의사 4명 가운데 3명이 항생제 처방을 줄였다. 아울러 산모의 제왕절개 분만율 공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제왕절개 분만율도 의원 별 실적이 공개된 뒤 항생제 처방률과 마찬가지로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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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심평원장이 추천하는 현명한 의료기관 이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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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 등 활용 건강정보 이해능력 키워야
■ 정보 공개가 가지는 한계도 많을 것 같다. 공개된 정보조차도 무심하게 넘기는 사람이 많은데?
=정보 공개는 환자에게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의료기관 경영자에게도 중요한 정보다. 미국 등의 정보 공개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병원 경영자였다. 공개된 정보로 환자들이 의료진에게 자꾸 질문하다보면 의사들도 진료 행태를 바꾸게 되고, 결국 의사들의 진료 행태 변화는 의료기관의 수익과 직결됐다.
■ 현명한 병·의원 이용을 위해 염두에 둘 일이 있다면?
=일반인들의 병·의원 이용 현황을 보면 대체로 과거 전염병 유행 시절만 생각해, 약 하나로 또는 수술 한 방으로 만성질환을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 모든 병에 관한 증상이 나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착각할 수도 많다.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건강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동네의원 등의 주치의나 환우회 등을 잘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과정에는 언론이나 교육 기관의 구실도 중요하다. 주치의제도 등 제도적 뒷받침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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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하루 평균 350만건에 이르는 병·의원의 건강보험 진료를 심사하는 기관. 모든 진료정보를 수집해 적절한 진료였는지 평가한다. 최근에는 모든 의료기관의 항생제, 주사제 처방률 등을 공개했다. 흔히 ‘의료계의 경찰, 또는 감독기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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