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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품 선택 리베이트 구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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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대접’이 제약사 영업사원의 중요업무
“성분명 처방 땐 약사가 주 로비대상 될 것”
‘성분명 처방 도입’을 둘러싸고 의사단체들의 반발이 본격화하면서, 지금까지 ‘제품명 처방 제도’ 아래 의사들이 누려온 리베이트 관행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의사 및 약사와 제약업체의 사이에 약품 선택과 구입 대가로 리베이트를 주고 받는 관행이 어느 정도 줄었지만 여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 제도 아래서 약의 ‘성분’이 아니라 제품을 결정하는 의사들은 여전히 제약업체들의 최대 로비 대상이라고 제약업계의 많은 인사들이 털어놓고 있다.
중소제약업체 사장인 ㅇ씨는 “의약분업 뒤 의약품 채택 리베이트는 전체적인 규모에선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의사들은 의약품 채택료(리베이트)를 받고 있다”며 “일부 대형 병원이나 의학 관련 학회에서까지 공공연하게 돈이나 향응을 요구하는 일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서울 서부지역의 영업을 맡고 있는 한 제약업체 영업사원도 “처방 약품의 결정권이 있는 의사들에게 로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식사와 술 대접 등 향응 제공에서 의사들의 골프장과 휴가지 예약에 이르는 일을 거의 모든 영업사원들이 중요 업무의 하나로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 ㄷ제약 한 영업사원은 “병·의원에서 보여주는 처방전 발행 기록 등을 보고, 해당 의사의 ‘기여도’를 평가해 리베이트를 산정하는 일도 흔하다”고 말했다.
건당 수천만원에서 억대를 넘는 큰 규모로 건네지는 것은 임상실험이나 병원에 대한 기부다. 최근까지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했던 ㄱ씨는 “주로 대학병원의 교수들이 임상실험을 위한 제약업체의 기부를 요청한다”며 “의학 관련 학회 행사 등 때도 개당 수백만원짜리 광고 부스를 제약회사들이 사주는 것은 굳어진 관행”이라고 말했다.
리베이트를 받는 것은 약사들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처방한 약품을 직접 사는 당사자여서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게 제약업체 영업사원들의 얘기다. 서울 마포구에서 약국을 열고 있는 약사 ㄱ씨는 “약품값을 결제할 때, 통상 제약업체 영업사원이 5~10% 가량을 깍아주거나, 상품권·현금 등으로 되돌려 준다”며 “앞으로 성분명 처방이 도입되면 약사들도 제약업체의 주된 로비 대상이 될 것같다”고 말했다.
반면, 한 제약업체 임원은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영업’도 과열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의사와 약사들도 뒷돈이 아니더라도 영업사원의 ‘정성’에 처방을 바꾸는 건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박경철 대한의사협회 대변인도 “일부 의사들이 아직도 예전 관행으로 리베이트 등을 챙기고 있다고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대다수 개원가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오리지널약, 곧 고가약 처방이 늘고 있는데 오리지널 약은 약품 채택료가 아예 없다”고 주장했다. 대한약사회 쪽은 “제약회사 입장에서 약사들에게 영업할 이유가 거의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액수는 의사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의약품 비리 문제 해결과 약효 등 약의 품질 관리에 정부가 더 강하게 나서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사무국장은 “다른 상품과는 달리 약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환자들은 의·약사의 처방과 조제를 믿을 수 밖에 없다”며 “제약회사의 영업으로 약품이 결정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의·약사 모두 전문가로서의 임무를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양상우 기자 himtrain@hani.co.kr 리베이트 근절방안 없나
“정부가 의약품 유통에 직접 개입해야” 한-미 자유무역협정 타결 뒤 의약품 유통 비리를 근절하자는 사회적인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17개 제약회사의 불공정거래 실태조사를 했으며, 결과 및 조치를 다음달에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제약협회도 최근 의학 관련 학회와 병원들에 ‘발전기금 등 후원금을 더 이상 내지 않겠다’고 통보하는 등 제약업계에서 투명한 유통질서를 확립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회성 조치로는 제약업계와 의·약계의 구조적인 의약품 유통 비리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시민단체들은 말한다. 실제 제약협회가 학회와 병·의원의 후원금을 중단하겠다는 데 대해선 제약업계 안에서조차 실효성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국내 한 중소 제약회사 관계자는 “약품의 품질이 대형 제약회사와 비슷해도 유통망 등에 있어 대형 회사를 따라갈 수 없다”며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리베이트와 기부금 등 기존 영업 방식을 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약협회의 이번 ‘후원금 중단 통보’도 일부 대형 회사들의 입김으로 내려진 결정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의 실태조사에 따라 예상되는 징계조처도 효과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제약업계 일선 영업사원들의 평가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공정거래위의 지속적인 감시도 필요하지만 정부가 의약품 유통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더욱 적극적 조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병·의원 및 약국과 의약품 도·소매가 이뤄지면서 의약품 유통 비리가 생겨나는 만큼 정부가 관할하는 의약품유통공사의 설립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약이나, 약효가 다른 제품보다 떨어지는 약은 과감히 퇴출시키는 의약품 선별 보험등재(포지티브 방식)를 기존 의약품에도 적극 적용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의약품 유통 비리를 내부에서 고발하는 사람을 실질적으로 보호해 주는 장치 마련도 거론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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