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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6 21:34 수정 : 2007.11.26 21:34

소광섭 서울대 교수

[한겨레가 만난 사람] ‘경락’ 존재 밝힌 소광섭 서울대 교수

한의학의 고전 <황제내경>은 경락이 근육과 내장은 물론 손톱과 머리카락까지 뻗쳐있고 이를 통해 기가 흘러 인체가 살아 움직인다고 적고 있다. 침과 뜸으로 몸의 특정 부위를 자극해 병을 고치는 한의학 원리의 근거인 셈이다. 이에 서양의학과 과학은 이의를 달며 묻는다. 경락? 실재한다면 보여달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소광섭 교수팀이 그에 답했다. 소 교수팀은 지난 10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움에서 1960년대 북한 평양의대 김봉한 교수가 몸 안에 또 다른 순환계가 있다고 주장해 국제 의학계의 관심을 끈 봉한학설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한의학계는 경락의 실체를 확인했다며 환영하고 있다. 의사들도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다. 반면 한의학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22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연구실에서 소 교수를 만났다.

“봉한학설은 우리 몸 안에 혈관계, 림프계와 다른 새로운 순환계가 존재하며 혈관에 상응하는 봉한관이 마치 수세미처럼 온 몸에 퍼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팀은 봉한관을 찾아냈고 그 안을 흐르는 봉한액의 존재도 확인했습니다.”

봉한학설은 우리 몸의 여러 기관에 봉한관이 있다고 한다. 소 교수팀은 쥐와 토끼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장기표면, 큰 혈관안, 큰 림프관 안을 비롯한 세 군데에서 봉한관을 찾았다. 피부와 척추 중심에 있다는 봉한관은 지금 찾고 있다. 피부의 봉한관을 찾게 되면 피부에서 장기로 연결되는 봉한관의 경로도 알게 될 것이다.

몸속 또다른 순환계 ‘봉한관’ 확인
치료약물 전달할 효과적 ‘통로’
평양의대 김봉한 교수 이론증명
“남북한 공동연구해 세계 알렸으면”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그는 위장의 모혈로 배꼽과 명치 사이에 있는 중완혈에 넣은 염료가 췌장쪽으로 주로 흘러가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의학의 경락 이론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소 교수는 “피부의 특정한 경혈에서 내장이나 장기와 연결되는 봉한관 체계가 예상된다”며 “이를 이용해 약물을 전달할 경우 서구 의학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암이나 당뇨 등을 더욱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봉한관을 이용하면 먹거나 또는 혈관에 주사할 때 약물이 온 몸을 순환하며 몸 전체에 펴져 효율성이 떨어지고 약이 필요없는 부위에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 교수는 봉한관 안을 흐르는 물질인 봉한액에 대한 연구도 진행중이다. 봉한학설은 봉한액에 아드레날린, 에스트로겐 등 각종 호르몬이 많으며 봉한관 안을 따라 흐르는, 살아있는 알이라는 뜻의 산알이 조직재생이나 조혈 작용 등을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봉한학설을 환자 치료에 적용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어떤 경혈이 어떤 장부에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말하면 경혈과 장부를 잇는 경로를 찾아내야 한다. 소 교수는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에 대해 “출발역과 종착역의 위치를 알아낸 셈”이라며 “봉한관의 실체가 밝혀진 만큼 광대한 새 연구영역의 문이 열린셈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제 봉한관을 흐르는 봉한액의 성분과 작용에 대한 연구는 물론 그 의학적 응용에 관한 연구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론물리학자인 그가 왜 한의학 연구에 뛰어들었을까. 소 교수는 “의학과 생물학은 현대 물리학 연구의 큰 분야”라며 “한국의 물리학자로 평소 한의학의 원리를 연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999년 한의학물리연구실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한의학 연구를 “아마추어 동호회 활동하듯이” 시작했다. 하지만 2001년 봉한학설을 만난 뒤 이듬해인 2002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주위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허황된 일을 한다는 비아냥에서부터 국립대 교수가 북한이 날조한 학설을 연구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난까지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학부장이었던 김두철 교수가 연구비 등을 지원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고, “물리학부 교수들의 열린 마음”이 큰 격려였다.

봉한학설의 입증도 쉽지 않았다. 김봉한 교수가 그를 후원하던 고위층 인사의 숙청 뒤 종적을 감춘데다 서구 학자들 가운데 누구도 김봉한 교수의 연구결과를 재현하지 못했다. 소 교수는 “고려청자는 있는데 만드는 방법은 사라진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처음 1년 동안 봉한관의 존재는 확인했지만 관의 추출이 어려워 연구를 더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장기표면에도 봉한관이 있다는 학설에 따라 토끼의 장기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 재일동포 사업가 정명이씨의 소개로 일본에서 1960년대 봉한학설을 연구했던 의사 후지와라 사토루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방영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녹화테이프를 40년 넘게 보관하고 있었다.

“그 테이프의 도움으로 저희 팀은 장기 표면에서 봉한관을 찾았습니다. 후지와라 선생은 우리를 만난 것을 너무 기뻐하면서 봉한학설은 진실이니 꼭 밝히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셨습니다.”

소광섭 교수팀이 쥐의 대동맥에 형광물질을 넣어 촬영한 봉한관의 모습.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 제공
답보를 거듭하던 연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봉한관의 두께는 머리카락 절반 크기의 절반인 15㎛이며 봉한액이 혈류보다 느린 초당 0.3㎜의 속도로 이동한다는 것도 밝혀냈다. 특히 소 교수팀은 형광염색법을 개발해 토끼와 쥐의 큰 혈관 안에 거미줄처럼 가늘고 투명한 봉한관을 찾아냈다.

“봉한관은 혈전이 응고된 것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형광염색을 통해 보면 혈전의 모양은 동글동글한 반면 봉한관의 핵은 봉한학설에서 밝힌 대로 막대모양으로 길쭉길쭉하게 보입니다.”

지금까지 소 교수팀은 이런 연구결과를 담아 과학기술논문색인(SCI)에 등재된 논문 10여 편을 비롯, 3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한의사는 물론 의사들도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는 지난 4월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린 침구관련 미국의사협회(AAMA) 19차 총회에 초청받아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물리학부 카벤디시 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했고 중국과도 연구를 준비중이다.

봉한학설의 입증에 큰 진전을 이뤘지만 소 교수가 여전히 아쉬워하는 것은 ‘원천 기술’을 가진 북한의 자료다. 소 교수는 봉한학설에 대한 자료와 함께 김봉한 교수와 함께 연구했던 연구원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위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인류의 칭송을 받기는 커녕 이론이 사장되고 억울한 상황에 몰렸을 김봉한 선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제 연구가 그 분에게 해원이 되고 인류 건강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의학은 민족의 보물창고이고 봉한학설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업적입니다. 남북한이 함께 연구해 이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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