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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3 19:39 수정 : 2008.01.03 19:39

긴 대기시간, 짧은 진료, 값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큰 병원으로 몰리는 환자들로 인해 대학병원의 접수 창구는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겨레> 자료 사진

[병·의원 100% 활용법] 무조건 ‘큰 병원 전문의’ 찾아가야 하나

‘답답증’ 대학병원 진료비 50만원-동네의원 1만5천원
첨단장비·대형설비·전문의 ‘과신’…서비스 질과 무관
‘주치의’ 24시간·365일 상시 상담시스템 제도 지원을

52살 여성이 갑자기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하며 숨도 쉬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이 증상은 30분 이상 계속된 뒤 좋아졌으나 열흘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반복됐다. 이 여성은 어디에서 진료 받아야 할까?

이 여성은 ‘심장병’이 걱정돼 큰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대학병원은 보통 3차병원으로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없기에 먼저 동네의원에 들러 ‘형식적’인 진료를 받고 의뢰서를 받았다. 2주 정도 기다린 뒤 의대 교수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까지는 택시로 45분이 걸렸고, 2~3분 정도 의사를 만난 뒤 심전도, 심장초음파검사, 핵의학심장단층촬영 같은 고가의 검사를 받았다. 환자는 50만원이 넘는 진료비를 냈다. 그리고 3주 뒤에는 검사 결과 ‘정상’이라는 말만 들었다.

이 여성이 평소 잘 알고 있는 의사가 있는 동네 단골의원을 찾아갔다고 가정해보자. 예약 없이 걸어서 10분 거리의 의원에 갔고 20분 정도 기다린 뒤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이 여성이 최근 폐경이 됐고 고3생인 딸의 대입 문제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 의사는 환자가 폐경과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불안 증상이 겹쳐 증상이 생겼다고 의심한 뒤, 혹시 있을지도 모를 갑상선기능항진증이나 빈혈 등 몇 가지 질병에 대한 혈액 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했다. 환자는 3일이 지난 뒤 심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들었다. 진료비도 1만5천원 정도 냈다.

암 같은 ‘중증’ 질환이라면 ‘큰 종합병원’에 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앞 사례의 환자 같이 몸의 어딘가에 문제가 있지만 무슨 병인지 알지 못한다면 어떤 의료기관을 찾는 게 좋을까? 단순하게는 ‘심장병’이 의심되면 심장 전문의에게, ‘간이 나쁘면’ 간장 전문의를 찾으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심장이 뛰는 증상이 나타난 사람 가운데 실제 심장병이 있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 불안증이나 스트레스 같은 문제인데, 심장 전문의는 이런 문제의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이 전문의는 자신을 찾은 ‘모든’ 환자가 심장질환이 ‘확실히’ 없음을 확인해야 하기에 여러 복잡한 검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병을 진단 받은 뒤에는 질병과 상관없이 큰 병원의 전문의가 더 나을까? 당뇨병을 예로 들면, 이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식사 조절, 운동, 투약 등 복합처방이 필요하다. 큰 병원이나 의원 모두 쓰는 약에는 차이가 없고, 환자의 생활습관을 변화시켜 유지하는 것이 관리의 핵심이다. 때문에 여러 가지 합병증이 생긴 환자가 아닌 다음에야 큰 병원이 의원보다 더 나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비싼 진료비와 긴 대기시간에도 불구하고 왜 큰 병원으로 몰리는 걸까? 넓고 편안한 로비, 첨단 의료장비 등이 마치 의료서비스의 질을 보증해주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기 때문이다. 언론도 최신 기술과 장비의 효과를 주로 보도하고, 큰 병원 의사를 많이 출연시킴으로써 이런 현상을 증폭시킨다. 큰 것을 선호하는 국민의식도 물론 한몫 한다.

큰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해도 동네의원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간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큰 병원과 동네의원의 차이는 ‘실력’의 차이가 아니라 ‘전문 분야’의 차이다. 의원은 환자 가까이에서 환자가 흔히 겪으면서도 진단이 명확하지 않은 건강문제를 다루는 데 장점이 있다. 이에 비해 큰 병원은 많은 시설과 장비가 필요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유리하다.

동네의원이 국민의 진짜 주치의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는 환자가 내 ‘주치의’를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장을 해 주고, 주치의는 자신이 진료하는 환자에 대한 책임성을 크게 높여야 한다. 낮 동안의 진료뿐 아니라 주말 및 야간에도 상담이나 진료를 제공하고, 환자가 필요할 때 연락도 쉽게 돼야 한다. 의원과 큰 병원이 각자의 구실을 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국민들이 제대로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다.

조홍준 울산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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