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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17 21:24 수정 : 2008.01.17 21:24

전상일의 건강이야기

전상일의 건강이야기/

초등학교 다닐 적에 비커를 알코올램프로 가열하려면 직접 가열하지 말고 중간에 ‘석면 쇠그물’을 놓으라고 배웠다. 선생님은 유리를 불로 직접 가열하면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석면 쇠그물’에 있는 석면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군대의 ‘엠(M) 60’ 기관총에는 석면 장갑이 보조 장비로 꼭 따라다닌다. ‘엠 60’은 총열에 손잡이가 없어 사격 도중 총열을 교체하는 데는 내열성이 뛰어난 석면 장갑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군대에서 병사들에게 석면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걸 보거나 들은 적은 없다. 1994년 서울 남산 외인아파트는 건물 곳곳에 폭약을 설치한 뒤 폭파 철거됐다. 정부에서는 폭파공법이 공학 기술의 발전이라고 추켜세웠지만, 건물을 철거할 때 생긴 하얀 구름먼지 속에 들어 있을 석면에 대해선 국민들에게 한마디의 주의나 설명도 없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우리 사회는 석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거의 무방비로 노출됐다. 석면이 발암물질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각심이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석면을 건축자재의 하나쯤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최근에도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지하철 천정에서 하얀 가루를 흩날리며 석면을 뜯어내는 일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값이 싸다는 이유로 석면이 들어간 자동차 브레이크패드(제동장치 부품)가 여전히 팔리는 것도 찜찜하다.

석면은 사람에게 폐암, 중피종, 석면폐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강력한 발암물질이다.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석면은 담배보다 훨씬 해롭다. 흡연자가 석면에 오랜 기간 노출되면 폐암에 걸릴 위험은 수십배나 높아진다. 하지만 석면에 노출된 뒤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기까지는 20~30년 이상 걸려, 석면의 위해성을 실감하기 힘들다. 때문에 석면을 ‘침묵의 살인자’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드디어 올 것이 온 듯하다. 서울시 지하철 1~4호선을 건축할 당시에 많은 양의 석면이 사용됐다고 하는데, 그 때 일했던 노동자들의 석면 피해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 의료진이 서울시 지하철에서 20~30년 이상 일한 직원들의 폐를 조사했더니 일반인보다 폐의 섬유화가 심해 폐 조직 자체가 굳은 사람이 훨씬 많고, 폐 흉막의 이상을 보인 비율이 30%에 이른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석면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루 400만명의 서울 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이 석면 위험지대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섬뜩하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에너지를 절약하고 교통체증을 막기 위해 무턱대고 지하철을 이용하라고 권장하기에 앞서 석면 걱정 없이 탈 수 있는 지하철 환경을 만들기 바란다.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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