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6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의료사고 구제법 제정을 촉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사고 피해 해결을 위한 법 제정은 20년째 미뤄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병·의원 100% 활용법] 의료사고 예방대책은 없나
미국도 ‘예방 가능한 의료과오 환자’ 사망률 8위은폐·과잉 처치·진료 기피…실태 파악조차 어려워
의료분쟁조정법 20년째 지지부진 ‘정책의지’ 미흡 몇 해 전 한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환자가 뒤바뀐 사건이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다. 진료기록부가 바뀌어 위암 환자가 갑상선 수술을, 갑상선암 환자가 위 절제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해당 병원은 사건이 있기 얼마 전 ‘보건복지부 평가 지역 최우수병원’으로 뽑힌 터라 충격은 더했다. 경찰은 수사에 나섰고 병원은 관련자를 징계했다. 환자들은 피해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사후약방문 격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사람들은 대체로 의료과오가 드물며 자신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의료인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믿음과 거리가 있다. 1984년 미국 뉴욕 주 병원들의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입원 환자의 약 4%가 의료과오를 경험한 것으로 나온다. 이 비율을 환자 수로 따지면 9만8609명에 이른다. 또 1999년 미국 국립의료연구원은 ‘예방 가능한’ 의료과오로 사망하는 입원 환자 수가 한 해 4만4000~9만8000명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인의 사망원인 8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수치는 의료 외의 다른 산업 분야와 비교하더라도 발생률이 꽤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사정이 이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의료과오가 많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의료 행위가 대단히 복잡한 것이라는 게 첫째 이유다. 예를 들어 입원 환자에게 주사를 한 번 놓으려고 해도 10~15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매 과정에서 과오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입원 환자는 이런 주사를 한두 번 맞는 것이 아니며, 주사 외에도 여러 가지 처치와 시술을 받아야 한다. 둘째 이유가 더 중요한데 의료과오를 보는 시각과 관련돼 있다. 의료인들에게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인 자신들의 시각이기도 하다. 환자들에 대한 책임감의 한 표현이다. 거꾸로 이런 관점에서 의료과오는 그 누군가의 잘못이 된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그 누군가’를 벌 줘야 한다. 이는 의료인들과 보통 사람들이 공유하는 시각이다. 의료과오가 의료사고로 이어지면 비난은 고스란히 그 의료인에게 쏠린다. 이 때문에 의료인의 처지에서는 할 수만 있다면 잘못을 숨기려 할 것이다. 또 책임을 면하려 더 많은 검사나 치료를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까다로워 보이는 환자의 진료는 피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태를 파악하는 것도, 현 상태를 개선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의료과오의 문제를 개선하려면 의료과오의 대부분이 의료인 개인이나 집단의 부주의 탓만은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을 확립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또 과거보다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만 하지만 현대의학은 여전히 한계가 많음도 알아야 한다. 의료인들이 더 좋은 시스템과 환경에서 일한다면 훨씬 많은 의료과오를 예방할 수 있다. 업무 과정 개선, 직무의 단순화 및 표준화, 의료 장비 개선, 적절한 업무량과 인력 수준 유지, 지속적인 교육 등은 의료과오를 줄이는 좋은 수단이다. 이처럼 시스템을 개선하려면 실태 파악과 원인 분석이 우선해야 하는데, 의료과오의 성격에 대한 바른 인식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은 그 전제가 된다.
이 대목에서 정부가 맡아야 할 큰 몫이 있다.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사회적 인식 변화의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1989년 의료계가 정부에 의료분쟁조정법 제정을 건의한 뒤 올해로 20년째다. 관련 법안들이 여러 차례 국회에 제출됐으나 지지부진한 논의 끝에 번번이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번 국회도 상황이 비슷하다. 정부와 국회가 더 적극적인 정책 의지를 보여야 한다. 사회적 인식 전환과 법 및 제도 정비와는 별개로 의료 현장의 의료사고는 현실적 문제다. 특히 상대적 약자의 처지에 있는 환자와 가족에게 전문적이고도 적절한 도움은 절실하다. 우선은 한국소비자원이나 의료소비자시민연대(www.medioseo.or.kr) 같은 시민단체에 도움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의료인이나 의료기관들이 적극적인 자세로 의료과오 발생을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또 의료기관과 진료 과목의 특성에 맞게 의료과오 예방 지침을 만들고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용준 한림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