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14 21:56
수정 : 2008.02.1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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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일의 건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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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일의 건강이야기/
우리나라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방화로 하루 아침에 잿더미가 됐다. 경찰에 잡힌 방화 용의자는 2년 전 창경궁에도 불을 놓으려 한 적이 있다고 하니, 방화가 일회성 사건만은 아닌 것 같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방화를 저지르는 사람 가운데에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관련 전문의들은 방화를 ‘충동조절장애’의 하나로 여기기도 한다. 이 장애는 본능적 욕구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자신이나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증상을 보인다. 병적일 정도로 심각한 도박, 도둑질, 쇼핑 등도 이에 해당한다. 방화광은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방화의 이유를 여러 정신적 상처에서 찾곤 한다. 먼저 소외되거나 학대 받은 사람들이 주변의 관심과 도움을 끌어내려 방화를 한다는 분석이 있다. 실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방화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밝혀진 조사결과도 있다. 또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신경기능에 장애가 있어 위험에 대한 판단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이 일부러 불을 놓는 사례도 많다고 알려져 있다. 아울러 임신 중에 습관적인 과음을 한 임신부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태아알코올증후군’이 나타날 위험이 있는데, 이 증후군을 가지고 있으면 일반인보다 방화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와 함께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공격적 의지를 드러내 보이려 방화를 하는 경향이 있다. 지속적으로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도 방화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불을 조심히 다루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서 자란 어린이, 정신질환을 앓거나 약물중독·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를 둔 어린이, 성적 혹은 신체적 학대를 받은 어린이들도 방화 위험이 있는 집단으로 분류된다. 성별로는 여성보다 남성 방화범이 압도적으로 많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저지른 살인범 가운데 청소년 시기에 방화를 했던 경우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방화와 범죄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 사회에서 방화를 막으려면 여러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주요 건물에 경비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손가정을 줄이고 어려울 때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며,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 때에 제공하는 게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이들은 불에 대한 환상을 갖기 때문에 화재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린이와 청소년 방화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방화 경력이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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