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21 20:41
수정 : 2008.02.2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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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일의 건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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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일의 건강이야기/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쇠고기 리콜 사태가 일어났다. 미국 쇠고기 수입국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양을 수입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쇠고기 리콜 과정과 이유를 보면 불안감은 더 커진다. 미국 정부나 쇠고기 가공업자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해 리콜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 한 동물애호단체가 도살장에서 학대받는 소들을 찍은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뒤따른 리콜이기 때문이다.
공개된 동영상에는 제대로 걷거나 서지도 못하는 소들도 있었다. 이런 소들이 도축장에 있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미국의 광우병 관리체계를 보면,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는 ‘다우너 소’들은 이런 증세가 광우병에 걸렸기 때문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뒤에만 도축장으로 옮겨질 수 있는데 이런 조사가 없었던 게 이번 리콜의 사유였다.
미국 정부는 문제가 된 도축장의 쇠고기를 먹었다 해도 인체 피해는 없다고 서둘러 발표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급성으로 나타나는 질병만 말하는 것이지, 감염에서 발병까지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는 광우병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리콜 조처 뒤에 미국과 우리 정부는 문제가 된 목장에서 가공된 쇠고기가 우리나라에 수입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두 나라 정부의 발표가 불안감을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 동영상 파문은 미국의 광우병 관리체계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쇠고기를 가공하는 다른 도축장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안전’만을 강변하는 미국 정부의 모습은 마치 영국에서 광우병이 폭발적으로 발생하기 전과 비슷하다. 광우병 발생 전에 영국의 일부 과학자들은 사람에게 광우병이 나타날 확률은 매우 낮다고 말했고, 정치인들은 쇠고기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언론에 자주 노출시켰다. 급기야 영국에서 광우병으로 100여 명이 사망하고 나서야, 과학자들은 실수를 인정했고 영국 보건당국은 국민에 사죄했다.
이번 리콜 사건으로 미국 도축장들의 실상이 드러난 점은 오히려 다행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국에서 강연한 미국소비자연합의 마이클 한센 박사는 “미국은 광우병 발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료 관리체계에 허점을 지니고 있으며, 광우병 전문 과학자들은 미국 정부에 더욱 엄격한 광우병 관리체계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국가는 미국에 쇠고기 수입조건을 엄격하게 요구할 필요성과 동시에 권리를 가지고 있다.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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