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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06 21:09 수정 : 2008.03.06 21:09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범위 확대를 요구하는 여론(오른쪽)에도 불구하고 민영의료보험(왼쪽)을 활성화하려는 새 정부의 정책이 벌써부터 우려를 낳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병·의원 100% 활용법]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바람직한가

전체 진료비 중 환자 부담률 40%로 과다
민영보험 조건 까다롭고 정보제공엔 인색
“미국식 ‘민영’ 따라 하면 대재앙” 새길만

하루가 멀다 하고 쌓이는 스팸 전자우편 가운데 최근 들어 유난히 눈에 띄는 게 있다. 민영의료보험(이하 민영보험) 광고 우편이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 가입할 것을 권한다. 과연 민영보험에 들어야 할까? 의료 제도와 정책을 연구하는 처지에서 속 시원하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예상치 못한 질병·사고와 이에 들어가는 의료비를 준비하려면 민영보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지도 모른다.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2005년 기준 전체 진료비에서 건강보험 보장 비율이 61.8%로 추정됐다. 환자가 내는 돈이 전체 진료비의 40% 가량 된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과부담 의료비’에 대한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과부담 의료비란 가계소득 가운데 환자가 내는 의료비 지출이 15% 이상 되는 것으로, 과부담 의료비 지출 가구의 비율로 보면 우리나라가 방글라데시, 베트남, 중국 다음으로 높다. 예상치 못한 의료비 지출에 대비하기 위해 건강보험 말고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민영보험이 과연 좋은 대비책일가? 문제는 이 질문에 순순히 긍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에 맞는 민영보험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러 보험 상품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좋다는 민영보험이라도 계약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자주 생기는 질병이나 수술 등이 제외되는 사례가 심심치 않다. 보험금을 받을 때도 적지 않은 난관이 있다. 보험금 지급 약관을 까다롭게 해석해 보험금을 주지 않거나, 보험금 삭감 기간과 삭감률을 보험 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늘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민영보험에 가입해 제대로 의료비를 보장 받으려면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민영보험에 대한 정부의 규제나 정보 제공 수준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보험소비자협회(cafe.daum.net/bosohub)와 같은 단체가 있다.

따지고 보면 보험회사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민영보험은 보험 기업이 파는 상품이며, 회사 입장에서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쟁적인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업 활동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의료비로 나가는 돈은 줄어들고, 결국 민영보험의 수입 보험료 대비 보험금 지급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건강보험은 보험료 수입의 거의 대부분이 국민의 의료비로 지출된다.

민영보험이 몸집을 불린다면 국민 의료보장의 관점에서 낭비 요소는 커진다. 환자 진료를 위해 쓰여야 할 의료비가 보험 회사의 이윤과 영업 비용으로 지출되는 셈이다. 국민들이 의료비에 쓰는 돈은 커지는데, 실제 국민들이 느끼는 의료보장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의료 이용의 불평등이 더 커질 수 있다. 한 조사 결과를 보면 하나 이상의 민영보험에 든 응답자 비중이 전체 가구의 61.4%에 이르렀는데, 소득 계층별로 가입률에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민영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저소득층은 아파도 병·의원에 가지 못해, 병을 키우거나 과중한 의료비로 가계가 파탄날 우려가 있다.


방법은 있다. 정부가 민영보험을 적절하게 규제하면서 건강보험의 보장범위를 높이면 된다. 2005년 한해 민영보험의 보험료 수입은 8조~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는데, 이는 건강보험 보험료 수입의 절반에 이르는 규모다. 같은해 건강보험 전체 암 진료비가 1조3600억여원인 점을 고려해 건강보험이 민영보험의 보험료 수입을 흡수한다면 보장범위는 눈에 띄게 높일 수 있다.

최근 새 정부가 추진하는 것으로 들려오는 민영보험 활성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등은 심히 우려스럽다. 새 정부는 민영보험의 천국, 미국을 본보기로 삼으려는 것일까?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이치로 가와치 교수는 “미국을 따라 하려는 어떤 시스템이든 미국과 같은 대재앙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국민을 섬기려는 정부라면,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장하는 데 힘써야 한다. 국민들로 하여금 민영보험에 가입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해서는 안 된다. <끝>

최용준 한림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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