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5.01 21:34 수정 : 2008.05.01 21:34

전상일의 건강이야기

전상일의 건강이야기

며칠 뒤면 어린이날이다. 어른들은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들의 권리와 행복을 보장하겠다면서 ‘어린이 헌장’도 만들었다. 어린이 헌장에는 “어린이는 위협으로부터 먼저 보호돼야 하고,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이 헌장의 내용이 무색할 정도다. 어른들은 어린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심지어 성추행 및 학대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빈번하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가 생기면 어린이들은 법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이기 쉽다. 어린이가 자신이 겪은 피해를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를 제3자가 찾아내지 못하면 어린이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때 어린이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다는 선입견 때문에 어린이의 진술이 증거로서 중요한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잘못 알려진 것이며, 어린이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코넬대의 밸러리 레이나와 척 브레이너드 교수는 <거짓 기억의 과학>이란 책에서 기억에는 일어난 사건의 ‘내용’에 대한 기억과 사건을 나름대로 해석해 ‘의미’를 기억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들은 내용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고, 어른들은 의미를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연구 결과, 어린이의 내용 기억과 달리 어른의 ‘의미 기억’은 왜곡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의미 기억은 사건에서 발생한 의미를 추출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천천히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거짓 기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어린이들은 의미를 기억하는 경우가 드물며, 어린이가 기억을 잘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질문을 던진다면 어린이의 기억이 틀릴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이는 어린이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상황에서 어른 피의자나 증인들의 진술과 어린이의 진술이 엇갈릴 때 어린이의 진술이 오히려 신빙성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어린이 학대 사건에서 어른과 어린이가 과거 일을 기억하는 구조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어른의 진술에 무게를 두는 현행 미국의 법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두 교수가 개발한 기억이론 모형으로 실험한 결과 증인들은 의미 기억보다는 내용 기억을 하는 경향이 있어 궁극적으로 기억의 오류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우리나라 법원이 만 2살 어린이의 진술을 결정적 증거로 채택한 사례가 있는데, 과학적 접근으로 어린이의 진술이 나왔다면 이는 타당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