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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14 17:58 수정 : 2008.07.14 17:58

담도내시경(ERCP) 시술에 의한 합병증, 장천공으로 배안에 가득찬 고름.

지난 3월말 '시술한 환자가 사경을 헤멜 때 의사의 심정' 을 블로그에 썼습니다(링크 참조). 다행히 그 86세 할머니께서 입원 74일만에 무사히 퇴원하셨습니다. 단골 블로거들께서 잊지 않고, 그 할머니의 생사를 물어오셔서 보고드립니다. ^^

위의 사진은 할머니의 3D-CT입니다. 담도내시경(ERCP) 시술 중 유발된 장천공에 의하여 배안에 고름이 찬 것(좌측의 파란 화살표)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고름집의 의미를 아는 의사라면 식은땀이 날 것입니다. 노란 화살표는 할머니의 척추뼈 상태를 보시라고 표시했습니다. 모두다 주저 앉았죠? 꼬부랑 할머니란 것, 할머니의 평소 상태가 간접적으로 상상이 되시죠?

담도내시경으로 장천공부위를 덮는 튜브를 담도에 여러개 삽입. (왼쪽) 복강 내의 고름집에 피부를 통하여 튜브를 꽂은 사진. (오른쪽)

1달이 지나도록, 고름은 계속 나오는데…


원칙적으로 응급수술을 해야하지만, 할머니의 연세와 일반상태를 고려했을 때 수술 후 회복이 안되어 사망할 위험이 높았습니다. 그래도 개복수술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결정이라고 설명을 하였지만, 보호자 분들은 죽어도 수술은 안하겠다고 하시고... 고육지책으로 위와 같이 장천공부위를 지나치는 튜브를 담도에 넣어 천공된 부위를 보호하여 스스로 아물도록 하고, 복강 내에 생긴 고름은 우측 옆구리에 튜브를 꽂아 밖으로 배액하였습니다.

다행히 2주일 뒤 촬영한 CT와 조영사진에서 장밖으로 조영제가 더이상 빠져나가지 않아, 장천공은 아문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런데, 튜브를 통하여 밖으로 배액되는 고름의 양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고름에서 배양되는 균이 항생제 내성을 가진 녹농균(워낙 독한 균임)이라 고용량 항생제를 사용하다보니, 급성 신부전이 생겨 소변도 안나오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죽어도 그냥 죽겠다고 할머니는 수술은 거부하시는 상황이었고, 장천공이 아물지 않아 계속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다른 병원선생님들의 토론회에 할머니의 검사결과와 자료를 제출하고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많은 경험이 있는 선생님들께서도 2주이상 고름의 양이 줄지 않는다면, 고름을 공급하는 source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름집에 박아 놓은 튜브로 조영제를 주입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으악~ (진심으로). 사진의 왼쪽부터 화살표를 따라 조영제가 장으로 차들어가는 것이 보임니다. 장천공이 아물지 않았거나, 새로 터진 것이죠. /한겨레 블로거 한영호

죽어도 수술은 안하시겠다는데, 그럼 이 방법은 어떨까?

하늘이 노랗더군요. 수술 밖에는 방법이 없다. 문제는 수술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담도내시경 중 생긴 장천공은 단순하게 천공부위를 꼬매는 수술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담도와 십이지장 대부분을 잘라내고, 장과 간을 직접 이어주는 큰 수술을 해야하거든요.

할머니의 상태는 이렇게 큰 수술을 하다가 죽을 것 같고, 보호자들은 죽어도 수술을 안한다고 버티시고…. 고육지책으로 다시 담도내시경(ERCP)를 해서, 장이 터진 곳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보기로 하였습니다.

철사와 비닐로 덮힌 스텐트를 담도에 넣었습니다.

담도와 십이지장이 연결되는 부위 보다 약간 더 담도 안쪽으로 천공된 것이 보이더군요. 내시경으로 그 부위를 꼬맬 수는 없고해서, 윗 사진의 철사와 비닐로 덮힌 스텐트를 담도에 넣었습니다. 이 스텐트가는 천공부위를 눌러서 소통이 막히기를 기대해보았습니다.

위와 같이 스텐트를 넣고 나서 다음날부터 거짓말처럼 고름이 배액관으로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상태도 빠르게 호전되어, 퇴원하셨습니다. 입원 74일만에 걸어서 집에 가셨습니다. ^^

74일 동안 말로 다하지 못할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 아드님들을 키우셨다고 하더군요. 변변한 효도도 해드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면 너무 허망하다며 제 가운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노신사(아드님) 앞에서 죄인인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간혹 문병을 오는 증손자를 바라보시는 할머니의 눈망울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의사와 환자, 보호자 간의 믿음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6월 27일 대한담췌관학회 집담회에서 위의 사례(case)발표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ERCP분야에서 제일 유명하신 선생님들을 모시고 치료경험을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대부분은 특이한 사례나 잘치료한 사례를 발표하시는데, 저만 제가 만든 합병증으로 고생한 이야기를 발표하였습니다.

슬라이드 마지막에는 제가 뒤돌아 보기에 잘못한 점을 정리하여, 우리나라의 담췌관분야를 이끌어 가시는 선생님들의 비판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저 또한 다음에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였을 때, 더 좋은 치료방법을 선택하고, 다른 분들도 간접경험을 통하여 보다 좋은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그 따위로 치료하려면 의사 때려치세요.'란 말씀까지 들을 각오로 사례발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이 상황에서의 마음고생을 해 본 사람(의사)끼리 통하는 것이 있었나 봅니다. 이어서 몇 분께서 좋은 지적과 적절한 충고를 해주셨습니다(다행히 부드럽게~).

할머니가 퇴원하는 날, 보호자에게서 받은 선물입니다. /한겨레 블로거 한영호

위의 넥타이는 할머니가 퇴원하는 날, 보호자에게서 받은 선물입니다. 넥타이가 닳을까봐 상자에서 꺼내지도 않다가, 학회 집담회에서 발표하는 날 처음으로 이 넥타이를 메고 발표를 했습니다. 앞으로 비슷한 중환자가 생길 때만, 부적처럼 이 넥타이를 메고 치료를 할까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저 할머니를 수술했더라면 죽었을 거에요. 보호자와 선생님(저)이 서로 믿음이 있었으니, 저렇게 악착같이 여러 시도를 했을테고, 책에 나오지 않는 방법까지 시도해서 좋은 결과를 유도했다고 보예요.

세월이 아무리 변하고, 세태가 바뀌어도 역시 의사와 환자 사이의 믿음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확인해 준 사례라고 생각되요.'

정년퇴임을 앞둔 유명하신 교수님(이런 분을 대가(大家)라 하죠)께서 술잔을 기울이며 해주신 말씀입니다.

/한정호(청주 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과장)

P.S : 1. 국내 및 전세계에서 위의 방법으로 치료한 보고가 없어, 조만간 증례보고 하려 합니다. 단, 영동세브란스의 이동기교수님이 같은 방법으로 치료하신 경험이 있으나, 논문으로 보고는 안하셨답니다. 경험을 나누어 주신 이동기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2. 논문 및 위의 글은 모두 보호자께 양해를 구하였음을 확인합니다. 다시 한번 아드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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