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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면역결핍 12살 수현이 가족에 ‘추가부담’ 결정
사경 헤매는데 처방 제한…의료진도 “특수성 감안을”
“차라리 암이나 백혈병이었으면 ….”
선천성 면역결핍증(CGD)을 앓는 12살 수현이의 어머니 현민숙(45)씨는 목이 메었다. 수현이는 전국에 40여명밖에 없다는 드문 병을 안고 태어났다. 생후 이틀 만에 폐렴으로 열이 올라 여린 몸을 독한 항생제에 맡겼고, 기나긴 검사 끝에 면역결핍증 판정을 받았다.
작은 몸은 전쟁터였다. 유자차 한 잔이면 나을 감기에도 온갖 감염이 이어져 사경을 헤맸다. 콩팥을 망가뜨리고 눈을 멀게 할 수도 있다는 독한 항생제, 항진균제를 써야 했다. 지금도 비장엔 고름이 찼고, 독한 약에 간은 부어올랐다. 어린 소녀는 “나 임신부 같아”라고 서글픈 농담을 한다.
수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6년 4월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지금 6학년 나이가 됐다. 링거 주사로 하루 5∼10종씩 맞았던 독한 약 때문에 키는 135㎝에서 1㎝도 더 자라지 않았다. 지금도 하루에 항생제 4종 14팩, 항진균제 1팩을 견뎌낸다. 반코마이신, 브이펜드, 보리코나졸, 암비솜, 캔시다스 …. 이름도 낯선 주사약들은 한 팩에 10만~30만원으로 약값만 하루 80만원, 한 달 700만~800만원씩에 이른다. 수현이네 가족이 감당하기엔 엄청난 액수다.
10여년 병수발로 가난과 눈물만 남은 수현이네에 최근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이닥쳤다. 1200만원 가량으로 알았던 병원비에 무려 9100만원이 추가돼 1억여원을 내라는 통보였다. 지난달까지 정산된 병원비는 모두 6억1천만여원. 주사료만 5억1천여만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사약값 가운데 9100만원은 급여 기준을 벗어났다’고 결정했고, 병원은 이의 신청을 거듭하다 결국 ‘환자 부담’을 통보한 것이다.
현행 의료 급여나 건강보험은 지출을 통제하려고 여러 제한을 둔다. 1차 치료에서 값싼 약을 먼저 써야 2차 치료에서 비싼 약을 쓸 수 있고, 많은 경우 항생제·항진균제를 동시에 두 가지 이상 쓰는 것도 제한한다. 병원 진료가 이런 기준을 벗어나면 돈을 주지 않는다.
수현이 같은 희귀병 환자와 가족, 이들을 진료하는 의료진은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서울대병원 김중곤 교수(소아청소년과)는 “보편적으로 입증된 ‘의학적 근거’ 없이는 약을 두 가지 이상 쓰지 말라고 하는데, 정립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희귀 난치성 질환’이라 불리는 것”이라며 “환자가 위중하면 제한된 약이라도 곧바로 쓰거나 여러 약을 조합해 쓰는 시도를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선천성면역결핍질환협의회 박인숙 회장도 “독한 약이 좋아서, 보험 재정 등을 축내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다”라며 “약값은 개인이 감당할 한계를 넘어섰는데 정부마저 이런 병의 특수성을 외면하면, 아이들을 앉아서 죽이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덕형 보건복지가족부 질병정책관은 “재정이 무한한 게 아닌 만큼 보편적 치료 기준에 맞아야 진료비를 준다는 틀을 깨기가 어렵다”며 “희귀 난치병의 특수성을 헤아려 급여 범위를 넓히려 하지만 예산예 한계가 있다는 점이 고충”이라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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