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23 19:06
수정 : 2009.06.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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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일 연세의료원장(왼쪽에서 두번째)과 박무석 주치의(왼쪽에서 세번째) 등 김아무개 할머니의 의료진이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인공호흡기가 제거된 상태와 경과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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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 뗀 김할머니
침상 누워 편안한 모습…병원 “수액·영양공급 지속”
유족 “돌아가시기 바란것 아냐…살아계시면 감사”
“천국에서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으니 엄마, 마음 편히 가서 아버지 만나 ….” “ 키워줘서 고마웠어요.”
23일 오전 10시6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세브란스병원 1508호실. 1년4개월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김아무개(77) 할머니의 존엄사가 시행되기 직전, 김 할머니의 세 딸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흐느꼈다. 산소호흡기 제거의 충격을 염려한 듯 딸들은 병실 문을 나섰고, 국내 첫 존엄사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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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23일 국내 첫 존엄사 시행, 시간대별 상황(※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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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21분 주치의인 박무석 교수가 착잡한 표정으로 김 할머니의 입에 물려 있던 호흡기를 떼어냈다. 3분 뒤, 인공호흡기 전원이 꺼졌다. 자리를 지키던 아들 등 가족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호흡기 제거 뒤에도 김 할머니는 얕은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김 할머니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는 말도 전해졌지만, 병원 쪽은 “의미 없는 조건반사”라고 말했다.
이날 존엄사 시행은 아침부터 준비됐다. 오전 8시50분, 김 할머니는 그동안 인공호흡기를 통해 연명치료를 받던 9층 중환자실에서 15층 일반 병실(1인용)로 옮겨졌다. 이동 과정에선 기계식 인공호흡기 대신, 손으로 입에 바람을 불어넣는 수동 인공호흡기가 사용됐다. 이때 김 할머니 체온이 25도까지 내려가 의료진이 긴장하기도 했지만, 곧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오전 9시50분 김 할머니를 보내는 임종예배가 시작됐다. 임종예배에는 김 할머니의 아들과 딸, 손녀 등 가족 11명, 존엄사 1심 판결을 한 김천수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 존엄사 소송을 진행한 신현호 변호사 등이 참여했다. 예배는 김 할머니가 17년간 다니던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진행했다. 담임목사는 예전에 김 할머니가 좋아하던 성경 구절을 읽고 찬송가도 불렀다. 임종예배가 끝나고, 가족들은 ‘어머니 마음’을 함께 불렀다.
임종예배 뒤 호흡기를 실제 제거하는 일은 여성 가족들을 내보내고 아들과 사위, 의료진만 남은 상태에서 진행됐다.
김 할머니는 호흡기를 뗀 뒤 이날 밤까지 계속해서 자신의 힘으로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혈압, 맥박 등도 모두 정상이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환자가 호흡기 제거 3시간이 경과한 뒤까지 안정적으로 자가호흡을 하고 있다”며 “병원은 수액과 영양 공급 등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흡기가 떼어진 뒤 가족들은 병실 옆 대기실에 머무르며 돌아가면서 김 할머니를 들여다보고 있다. 김 할머니의 발과 팔, 다리를 주무르며 “엄마 얼굴 많이 상했다. “엄마, 힘들지?” 등의 말을 건넸다. 김 할머니는 이날 오후 내내 자연스런 모습으로 침상에 누워 있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가족 대표인 큰사위 심치성(50)씨는 “장모님은 생전에도 억지스런 생명 연장은 하고 싶지 않다고 늘 말씀하셨고, 존엄사 소송을 한 것은 그런 어머님의 뜻을 받든 것”이라며 “억지스러운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돌아가시기를 바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씨는 이어 “장모님이 이 상태로 계속 살아계신다면, 가족들 모두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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