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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13 16:03 수정 : 2013.08.13 16:03

생생육아

“방학에 뭐 하지?” 아이들 방학을 맞아 걱정을 늘어놓는 엄마들 틈에서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방학 시작과 함께 8살, 6살 두 아이가 열흘간 시골의 할머니·할아버지댁에서 지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집안일 돌보며 아이들과 지내는 ‘전업 맘’에게 귀한 열흘의 휴가가 생긴 셈이다. 야호! 방학이 다가올수록 마치 내 방학인 양 기쁘고 설렜다. 육아와 가사를 기꺼이 ‘선택’했고 아이들과의 일상을 나름 잘 꾸려가고 있지만, 나만의 시간이 늘 아쉬웠다.

아이들을 보내놓고 모처럼 밀린 잠을 자고 한가로이 책을 읽고 옥상 텃밭을 가꾸며 홀가분함을 즐겼다. 남편과 오붓하게 영화를 보고 모임에 같이 가기도 했다. 마지막 사흘은 밀양에서 사진을 찍으며 보냈다. 송전탑 공사를 맨몸으로 막아내고 계신 ‘할매’들의 일상을 담았다.

시부모님 제안으로 시작된 두 아이의 ‘엄마 떨어지는 연습’은 올해로 삼 년째가 된다. 큰아이 여섯 살이던 재작년에 처음으로 엄마 없이 할머니·할아버지와 나흘 밤을 자고 오더니 지난해에는 일주일, 그리고 올해는 열흘, 아이들 스스로 기간을 정하고 할머니를 따라 시골로 내려갔다. 내게는 ‘아이들 떠나보내는 연습’인 셈인데 처음에는 아이들 물건만 봐도 꾹꾹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곤 했지만, 이제는 훨씬 의연해졌다.

초등학생이 되어 방학을 처음 맞은 큰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낸 이야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에 적었다. “동생 해람이와 나는 엄마 곁을 떠나서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왔다. 엄마와 아빠가 서울에서 무엇을 할지 궁금했다”라고 첫날의 일기를 썼다.

이틀에 한 번 산기슭에 있는 할머니·할아버지 논밭을 따라가 개울가에서 물레방아를 만들어 돌리고 고운 흙으로 ‘꽃 섬’을 만들며 놀았단다. 마른 풀을 수레에 담아 퇴비장으로 옮기는 일도 해보았는데 아버님이 찍은 영상에서 아이들이 제 몸보다 큰 수레를 밀고 끄는 모습이 참 대견했다. 할머니·할아버지 밭에서 딴 참외는 “씹기도 전에 달콤한 향이 나는 참외”라고 했고 “밭에서 갓 따서 바로 냄비에 찐 옥수수는 정말 달콤하고 맛있었다”라고 전해주었다.

어느 날엔 점심밥을 먹으며 밥이 식탁으로 오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쌀은 누가 만드는지 할아버지가 물으셔서 아이들이 ‘자연’과 ‘씨앗’이라고 대답했고, 이렇게 시작하여 우리가 밥을 먹기까지 거치게 되는 여러 사람의 손길을 떠올려 보았단다. “쌀을 만든 사람에는 정미기 만든 아저씨도 있고 쌀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밥을 차려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라고 그날의 일기에 적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밥 먹기 전에 “잘 먹겠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이 그런 자연과 모든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밥을 먹을 때 “할아버지 밥그릇!”을 외치며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싫은 음식도 조금씩 먹기로 했다.

 나날이 함께 지낼 때는 몰랐는데 아이들이 부쩍 자랐음을 느낀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잘 먹고 잘 놀았으니 더 밝고 건강해졌으리라. 내 말끝에 “싫어!” 를 외치던 아이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먼저 들어주고, 알아듣게 이야기하고, 기다려주기,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기. 아이들을 건강하고 바르게 이끌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 가르침의 비결은 그것이었다. 어머님·아버님께 한 수 배웠다. 베이비트리 필자 빈진향 babytr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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