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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17 17:41 수정 : 2013.09.21 12:10

‘쏜살같은 세월’을 활을 쏘며 건강을 유지해온 91살의 이선중 전 법무부 장관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그의 중학교 동창 50명 가운데 48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건강과 삶]
91살 이선중 전 법무부 장관의 국궁 사랑

인간이 활을 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날지 못하는 육상동물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늘 높이 소원을 닿게 하려는 원초적인 욕망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활은 활시위를 당겨야 한다. 당기면 아래쪽은 올라가고 위쪽은 내려온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 높은 곳은 누르고 낮은 곳은 올린다. 남으면 덜어주고 모자라면 보탠다”고 하늘의 도를 활의 작동법으로 쉽게 설명했다. 평생을 검사로 지내면서 법무부 장관을 끝으로 35년 전인 1978년 12월 정년퇴직한 이선중(91) 옹이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활터인 황학정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것도 노자의 속삭임 때문일 것이다.

91살의 나이를 새겨보자.

이 옹이 졸업한 경북 김천중학의 동기생 50명 가운데 아직 생존한 이는 단지 2명. 대부분 저세상으로 가셨다. 그런데 이 옹은 아직도 일주일에 닷새를 오후 2시 반이면 안국역에서 내려 천천히 30분을 걸어 사직공원에 있는 황학정에 도착한다. 그러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옷장을 열어 활과 화살을 꺼낸다. 사대에 서면 145m 떨어진 언덕에 가로 2m, 세로 2m66 크기의 나무 과녁이 세워져 있다. 국궁 동호인 7~8명이 함께 선다. 이 옹은 최고참이자 이 국궁 동호회의 고문으로 가장 왼편에 서서, 가장 먼저 활시위를 당긴다. 허리춤에 찬 활통에는 5개의 활이 있다. 5개가 1순인데, 매일 7순을 쏜다. 모두 35발을 쏘는 것이다. 매 순마다 잠시 쉰다. 과녁 근처에선 화살을 모으는 이가 기다렸다가 화살을 모아 도르래에 실어 사대로 보낸다.

“내가 지금은 힘이 떨어졌지만 40대 때는 30발 모두 쉬지 않고 명중시킨 적도 있어요.”

145m 떨어진 과녁을 그 어떤 조준장치 없이 그냥 감으로 겨냥해 맞히기란 쉽지 않다. 이제는 명중시키고 안 시키고가 중요하지 않다. 활시위를 당기는 ‘무아지경’의 즐거움이 매일 유지되는 것이 행복하다. 이 옹은 국궁 2단. 입단을 하려면 5발씩 9번을 쏘아 45발 중 25발이 명중돼야 한다. 57%의 명중률이니 10명이 지원하면 1~2명 정도가 입단에 성공한다고 한다. 이 옹처럼 2단에 오르려면 28발을 명중시켜야 한다.

91살 이선중 전 법무장관

검사시절 국궁대회서 3등 차지해
상품 받은 재봉틀 부인에 선물했다
국궁 2단인 그는 은퇴 뒤에도
1주일에 5일은 시위를 당긴다
“30년간 한번도 감기에 안걸렸어요
멀리 과녁을 보니 시력도 좋아져요”

검사 시절 ‘걸어다니는 법전’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기억력으로 유명했던 이 옹은 지금도 자신의 이야기를 해당 연도의 달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 옹이 국궁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0년 광주고검 차장 시절부터였다. 1947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그해 치러진 제1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이 옹은 식구들은 대구에 있고, 혼자 광주고검으로 부임했다. 그러곤 국궁을 만났다. 국궁을 쏘는 이들 가운데는 지방 유지와 예인들이 많았다. 국궁을 잡은 지 3년 만인 1963년에는 내친김에 국궁 전국대회에 출전했다. 현직 검사가 국궁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3등을 차지했다. 상품은 미싱(재봉틀). 당시엔 귀한 물건이었다. 부인에게 자랑스럽게 선물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 옹은 이 재봉틀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검사 시절 내내 활시위를 당기며 건강을 유지했던 이 옹은 1978년 12월 법무부 장관을 끝으로 은퇴한 뒤에도 활터를 잊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한번도 감기에 걸린 것이 없어요. 물론 활 때문이죠.”

‘동쪽에 사는 활 잘 쏘는 오랑캐’라는 뜻의 동이족은 중국의 한족이 오래전부터 한민족을 부르는 명칭이었다. 동이(東夷)족의 이(夷)자를 파자하면 큰 대(大) 더하기 활 궁(弓)이다. 우리 민족의 활은 몽골이나 일본의 활보다 크기가 작다. 1.2~1.3m의 단궁이다. 일본 활은 길이가 2m가 넘는 대나무 장궁이다. 그러나 활 제작 기술이 뛰어나 일본의 30~50m, 양궁의 90m, 몽골의 100m보다 사거리가 훨씬 멀다. 우리 조상은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았기에 활이 작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전통 활인 각궁은 물소 뿔, 소 힘줄, 뽕나무, 민어 부레 등을 이용해 단단하고 탄성이 강하게 제작했다. 초보자는 활을 끝까지 당기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활의 탄성이 강하다. 그래서 엄지손가락에 반드시 ‘깍지’라는 도구를 껴서 손을 보호한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유전자 중 활을 잘 쏘는 유전자가 이 옹에게 강했나 보다. “활 쏘는 것이 간단해 보여도 매우 집중해야 해요. 가슴의 힘을 빼고, 배에 힘주고, 활시위를 당겨 쏘기 전엔 태산같이 움직임이 없어야 하고, 쏜 뒤에도 호랑이가 꼬리를 내리듯 흐트러짐이 없어야 해요.” 가늘게 모은 날카로운 눈매와 일자로 다문 입술은 평생을 국궁으로 다진 이 옹의 단단한 건강함을 대변해준다.

호흡을 고르고 활시위를 당긴다. 그가 쏜 활이 창공을 가른다. ‘휘익’ 난다. 초속 70m로 ‘쏜살같이’ 사라진다. 과녁에 명중하면 ‘딱!’ 하고 소리가 멀리까지 울린다. 과녁 주변에 떨어지면 ‘쏙’ 하고 땅에 박히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언뜻 보아서는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팔만 놀리니, 그리 큰 운동이 될 것 같지 않죠? 활을 놓는 순간 조금의 움직임도 없으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해야 해요. 활시위를 당기는 동안에는 복식호흡을 해야 하니, 그 어떤 운동보다 뛰어난 전신운동이죠.” 이 옹의 국궁 자랑은 이어진다. “남들 다 하는 골프도, 등산도 해봤는데, 활 쏘는 것만큼 좋은 운동이 없어요. 시력도 좋아져요. 멀리 있는 과녁을 봐야 하니까요.”

1899년 고종이 경희궁 안에 세웠다가 일제 치하에 사직공원 인근으로 옮겨온 활터인 황학정은 고종이 누런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모습이 마치 황새가 날갯짓하는 것 같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서울 도심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만큼 수목이 우거져 있다. 이곳의 국궁 동호인은 모두 150여명. 70대 이상이 20여명, 60대가 20여명, 40~50대가 60여명이다. 한달 회비는 4만원. 전국에 모두 350개의 활터가 있다고 한다. “글쎄 언제까지 활을 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는 이 옹의 팔뚝에 힘줄이 아직도 살아 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한겨레TV-건강과 삶 #9] 아흔한살 이선중옹의 국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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