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24 18:30
수정 : 2013.09.24 19:52
[건강] 건강 렌즈로 본 사회
우리 사회에서 사유화(민영화)는 공공조직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성과를 증진시키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진다. 특히 관료들과 경제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철도·가스·공항 등 공기업의 적자나 낙후된 서비스는 사유화만 시키면 당장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보건의료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의료서비스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데 목적이 있는 영리병원을 도입하고 민영보험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런 사유화는 바람직한 것일까? 퀘르치올리 이탈리아 시에나대학 교수팀이 최근 <역학과 지역사회 건강>에 발표한 논문은 이런 질문의 답을 찾고자 했다. 연구팀은 보건의료 부문의 사유화가 실제 의료 및 건강 분야의 성과로 이어지는지 분석했다.
이탈리아는 1978년부터 국립보건서비스 제도를 운용했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사유화와 지방 분권화가 동시에 진행됐다. 연구팀은 1993~2003년 전국 19개 권역의 사유화 진행 정도가 상당히 달랐다는 점에 착안하고 이들을 비교했다. 의료 사유화 수준은 보건의료에 쓰이는 공공자금과 가계의 사적 지출 정도를 기준으로 분석했다. 의료체계의 성과는 ‘피할 수 있는 사망’ 수준을 활용했다. 즉 효과적인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면 막을 수 있는 사망자 수를 분석한 것이다. 이 지표는 호텔의 평가처럼 외관이나 직원들의 친절도 같은 평가 요소와는 달리 의료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을 종합적이며 가장 직접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이 피할 수 있는 사망 지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인 및 환자 인구 비율, 흡연·운동 같은 건강 증진 행동들도 감안해 분석했다.
그 결과 공공 보건서비스를 통한 의료 서비스 제공 등 공공 지출이 많은 지역일수록 ‘피할 수 있는 사망’의 감소 폭이 유의하게 높았다. 구체적으로 공공의료 지출이 100유로 늘어날 때마다 ‘피할 수 있는 사망’은 1.47%씩 줄어들었다.
반면 민간 의료기관에서의 서비스 이용이나 환자 본인부담금과 같은 사적 지출이 증가하는 것은 사망률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결과를 두고 연구팀은 의료서비스의 사적 제공이 많을수록 사망률 감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만약 그 부분이 공공 지출로 이뤄졌다면 ‘피할 수 있는 사망’을 더 많이 감소시켰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연구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일부 단서는 찾을 수 있다. 2011년 발간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건강지표 보고서를 보면 한국에서 전체 보건의료지출 가운데 환자의 본인부담금과 민영보험 등 사적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2%에 달한다. 논문에 소개된 이탈리아보다 두 배나 높다. 그럼에도 민영보험의 몫은 날로 커지고 진주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은 문을 닫고 있다.
이번 논문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분석 결과가 사유화를 추진하는 다른 국가들에 교훈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도 이들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지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영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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