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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육아종이 재발한 정소미씨가 남편과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진료실로 이동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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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육아종 앓는 정소미씨
“눈을 보며 말하고 싶은데, 제 침대 좀 돌려주실래요?” 아차 싶었다. 의자를 돌려 마주보았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정소미(25)씨는 가슴 아래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식사를 위해 침대를 세워 비스듬히 앉을 때 심한 통증을 느낀다.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 것이 정씨의 일상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씨 곁에는 어머니 홍명숙(55)씨가 항상 함께한다. 직장이 지방에 있는 남편 김영훈(28)씨는 한달에 두세번만 서울에 올 수 있다. 홍씨는 딸이 열살이 됐을 때 병을 알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스쳐가는 감기이거나 심하다 해도 폐렴이려니 생각했다. 아니었다. 딸은 선천성 면역결핍 질환의 하나인 ‘만성육아종’ 진단을 받았다. 만성육아종은 몸으로 들어온 균을 퇴치하는 구실을 하는 배식세포가 제 기능을 못하는 질환이다. 폐, 간, 뼈, 소화기 등 온몸으로 번질 수 있다. 엄마는 딸이 감기 기운이 있다 싶으면 매번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날음식을 조심하고 항생제·항진균제 등 약을 꾸준히 먹으면 괜찮다고 엄마를 안심시켰다. 엄마는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게 일상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환절기에 3~4번씩 감기를 앓으면 우리 딸은 10번 정도 아플 뿐이라며, 두려움을 애써 밀어냈다. 그 노력을 알았는지, 정씨는 잘 자라줬다. 홍씨가 한숨을 깊이 쉬며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이 돼 조심하라는 말을 달고 살았어요. 그러면 늘 딸이 ‘엄마 미리 걱정하지 마’라고 오히려 절 위로했어요. 그렇게 속이 깊은 딸이에요.” 하나뿐인 딸의 삶은 평범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던 중 결혼을 했다. 결혼을 여섯달 앞두고는 주치의를 찾아가 자신이 결혼을 해도 되는지 묻기도 했다. 남자 친구 김씨는 그런 정씨를 깊이 사랑했다. 3년 전 결혼한 부부는 혹시 아이에게 병이 유전될까 산전검사도 철저히 받았다. 아이에게 병이 유전될 확률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부부는 지난해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임신 초기, 정씨의 기침과 가래가 심해졌다.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만큼 병이 심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덤덤하게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안경 너머 쌍꺼풀진 정씨의 큰 눈이 붉어졌다. “그냥 지나가는 감기라고 생각했어요. 아이한테 안 좋을까봐 원래 먹던 약을 다 먹지 못하고 산부인과에서 허락하는 약만 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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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육아종을 앓아 하반신 마비 증세를 보이는 정소미씨.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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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레 부모 위로하던 속깊은 딸 결혼뒤 뱃속 아기 위해 약 줄이자
척추까지 균 퍼져 아기도 포기
백혈구 수혈 공여자 적어 ‘발동동’ 병원비 하루 100만원 감당할 길 없어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기적 바랄뿐” 임신 중기, 정씨는 결국 아기를 포기했다. 그는 지금 척추신경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정씨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을 돌봐주고 짜증까지 받아주는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뿐이다. 정씨는 병뿐 아니라 시간, 병원비와도 싸우는 중이다. 백혈구 수혈이 급히 필요하지만 몸에 맞는 백혈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정씨의 병은 항생제와 항진균제를 정상인보다 많이 사용해야하는 희귀 난치성 질환인데도 정상범위보다 많은 양의 약을 사용할 경우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지난 1월 입원한 정씨의 병원비는 1억3000만원이 쌓였다. 하루에 100만원 가까이 든다. 정씨는 열살에 발병한 탓에 민간의료보험도 들 수 없었다. 가족의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정씨 남편이 혼자 버는 250만원 정도의 월급은 병원비로 고스란히 들어간다. 오히려 남편 월급이 ‘많다’는 이유로 관련 기관에서 지원 한번 받지 못했다고 했다. 정씨의 주치의인 김중곤 서울대병원 소아과 교수는 “이 병은 항상 약을 먹어야 하는 병인데, 약값이 보험이 안 돼 가족들 부담이 상당하다. 백혈구 수혈이 급히 필요할 때가 있지만 백혈구 공여자가 적어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 추석에 정씨는 병원에서 문자메시지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통화를 하다가는 울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정씨는 남편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자신의 곁을 변함없이 지켜줘서 고맙다. 지금 정씨 가족에게 다른 욕심은 없다. 가족이 행복했던 그때로, 정씨가 아프기 전 그때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런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하게 바랄 뿐이라고 했다.(*정씨와 가족은 이름과 얼굴 공개를 원하지 않아 가명으로 표기했습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나눔꽃 보도 이후 ‘홀로서기’ 꿈꾼 투병 21살 1700여만원 도움의 손길 <한겨레>와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이 함께하는 ‘생명사랑 캠페인’을 통해 박민아(21)씨 사례(<한겨레> 7월31일치 9면)가 보도된 뒤 1700여만원의 정성이 모였다. 바보의 나눔 모금사업본부 이영화씨는 “기사가 나간 뒤 박씨의 공부를 도와주고 싶다거나 월 1만원씩 후원을 하고 싶다는 연락도 왔다”고 했다. 16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박씨는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자르고 붉게 염색을 했다. 대입검정고시 공부를 하는 틈틈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박씨 그림 속에서는 환한 봄날처럼 분홍빛 꽃잎이 흩날렸다. 박씨의 표정은 지난 여름보다 조금 더 밝아졌지만 병세가 나아지지는 않아 입원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 박씨는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한겨레 나눔캠페인 참여하려면 정소미씨 가족을 돕고 싶다면 계좌이체(기업은행 060-700-1226, 예금주: 바보의 나눔)와 전화(ARS 060-700-1226, 한통에 5000원)를 해주세요. 모금액은 정씨의 치료비로 쓰입니다. 현재 누적된 병원비만 1억3000여만원입니다. 남편의 벌이를 모두 병원비에만 쓴다 해도 젊은 부부에게 너무나 큰 부담입니다. 17~59살로 혈액형이 B형인 분들은 백혈구 수혈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백혈구 수혈은 일반 헌혈과 달리 절차가 복잡합니다. 검사도 까다롭습니다. 만약 검사 뒤 헌혈이 가능하다고 판정됐는데도 헌혈을 철회하면 검사 비용은 정씨에게 청구됩니다. 신청은 전자우편으로 받습니다. 이름·나이·주소 휴대전화 번호·혈액형을 적어 보내주시면 검사 방법과 일정을 알려드립니다.(담당: 정대희 서울대병원 의료사회복지사, 전자우편 21099@snuh.org)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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