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리포트] 상품을 파는 건강검진
호텔식 병원에 백화점식 상품
박아무개(33)씨는 최근 전남 곡성군에 사는 어머니가 환갑을 맞이해, 가족들과 의논한 끝에 환갑잔치 대신 종합건강검진 상품을 선물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다른 진료와 마찬가지로 역시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검진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였다. 아버지도 함께 검진을 받도록 했으며, 대장내시경이나 위내시경은 물론 각종 암을 조기검진한다는 종양표지자 검사 등이 모두 포함된 검진상품으로 예약했다. 여성의 경우 유방암이나 자궁경부암 검진이 있기 때문에 돈이 더 든다고 했는데, 두 사람을 합쳐서 약 350만원이 들었다.
박씨는 “병원에 문의해 보니 숙박을 하고 검사 내용이 더 많은 또 다른 검진상품은 한 사람당 400만~500만원까지 한다고 했다. 처음으로 비싼 검진을 받으시는 것이라 더 비싼 상품을 사면 좋을 것 같은데, 우리 형편에서 최대한인 이 정도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검진 뒤 박씨의 아버지는 대장 용종을 2개 떼어냈다. 용종이 악성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검사가 필요했고, 이에 대해서도 별도로 20만원 가까이 냈다. 박씨는 “값비싼 검진에서 암 등 중증질환이 나오지 않아 부모님도 매우 만족해하신다. 한 5년 뒤에 또 검진을 시켜드리기로 형제들끼리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효심강한 자녀들 유혹하는 병원들상품만 수십종에 가격은 천차만별
노인특화 상품 대신 가격맞춰 구입해 고가 상품일수록 선호도 높지만
소비자 의료비도 턱없이 높아져
“병원들 환자 건강보다 수익만 좇아” 검진상품을 개별적으로 구매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박씨처럼 자녀들이 부모님을 위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검진상품은 병원에 따라 다르고 또 검사 항목에 따라 수십만원대부터 수백만원대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선택이 쉽지 않다. 실제 주요 대학병원들의 검진 프로그램을 보면 암, 뇌혈관질환, 치매, 폐질환 등 여러 질환에 특화된 검진상품이 있고, 여기에 추가로 몇몇 검사가 첨가된 검진상품이 나열돼 있다. 검진상품만 수십종에 이르며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결국 어떤 상품이 부모님의 중증질환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적절한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박씨처럼 대부분 ‘가격’을 기준으로 구입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검진센터 관계자는 “상담을 하다 보면 치매나 암, 뇌졸중, 디스크 질환 등 노인들이 흔히 걸리는 질환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진하는 상품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가격으로 결정한다. 대체로 가격이 높은 상품일수록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병원들이 검진상품을 일반 상품처럼 파는 것에 대해서는 의료계 안에서나 시민단체에서 비판이 나온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진료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쪽의 심사 등이 있어 의료기관이 과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제한이 있는 것과 달리 검진은 그야말로 상품이다. 효과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 등 방사선 노출량이 많은 검사가 포함된 상품을 파는 것은 의료윤리 측면에서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요즘 대학병원들이 천만원에 이르는 검진상품을 개발해 국내외 환자들을 호객하고 있다. 값비싼 검진 장비와 시설을 갖춰 검진 사업을 하면서 환자들의 건강보다는 수익을 남기고 있다. 그 어느 영역보다 의료의 상업화가 이뤄지고 있는 현장이며, 이 때문에 국민들 의료비만 턱없이 높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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