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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6 18:16 수정 : 2005.10.16 18:16

“이념 앞서 아픈 사람은 치료 받아야” 박준영 이사장

“이념 앞서 아픈 사람은 치료 받아야”

의료법인 을지병원의 박준영(47) 이사장은 최근 자신이 지닌 많은 직함을 내놨다. 건강이 예전 같지 못해서다. 그런 그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유지하는 직함이 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북쪽 병원 현대화사업 추진위원장’이다.

그는 12~15일 평양에 다녀왔다. 올해 초부터 15억여원(현물 포함)을 들이며 정성을 쏟은 조선적십자종합병원 종합수술장이 제대로 지어졌는지, 앞으로 원만하게 운용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13~14일 이 병원 종합수술장을 돌아보고 준공식에 참석한 그의 낯빛은 매우 상기돼 있었다. “정말 기분 좋습니다.” ‘돈 되지 않는 일’에 십수억원을 쏟아붓고도 기분이 좋단다. 14일 종합수술장에서 세 차례에 걸쳐 치러진 추간판탈출증(일명 디스크) 환자 수술 땐 줄곧 수술방 앞을 서성거렸다. 타고난 의사다.

북쪽 최대 규모 병원인 이 병원과 그가 인연을 맺은 건 2003년 10월이다. 그때 평양에서 열린 남북·해외 평양 의학과학 토론회에 남쪽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가 이 병원을 둘러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충격적이었어요.” 할 말이 많았을 텐데 그는 말을 아꼈다. 대신 몸으로 말했다. 산부인과 전문의로 방대한 의료법인을 이끌고 있는 그는 그 뒤 대북 보건·의료 인도적 지원 사업의 첨병으로 나섰다. 처음엔 평양 낙랑구역 통일거리 정성수액제공장(링거액 공장) 설립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필수 기초 의약품인 수액제를 한해 500만병 생산하는 이 공장은 올 6월 준공됐다. 그는 이어 지난해 10월 화재로 핵심시설이 불타버린 조선적십자종합병원 현대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번 준공식은 그 1차 결실이다.

‘왜 이 일을 하냐’고 초보적인 질문을 던졌다. “전 병원에서 나서 병원에서 자랐어요. 질병과 함께 지냈죠. 조금만 치료하면 멀쩡하게 지낼 사람이 아파 누워 있거나 장애인이 되거나, 심지어 죽는 일은 견딜 수 없어요. 보건·의료는 체제나 이념을 초월한 문제예요.” 실제 그는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 딸린 집에서 스물두살 때까지 살았다. 평양의전 출신으로 1956년 을지로에 ‘박 산부인과’를 개업했던 박영하 을지재단 회장이 그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처음엔 그가 이 일을 하는 걸 반대했다고 한다. 효심이 깊기로 이름난 그는 그러나 이 일에 매달린다. “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지요.” 그가 조선적십자병원을 택한 것도 이 병원이 “북쪽 일반 인민을 치료하는 곳”이기 때문이란다.

이 병원 종합수술장 입구엔 ‘을지대학교 박영하 기증’이라 적힌 작은 철판이 내걸렸다. 그의 말이다. “아버님도 이젠 이해하세요. 조만간 아버님 모시고 (평양에) 와야죠.” 전쟁세대의 갈등과 이산의 상처는 이렇게 전후세대의 애씀을 통해 조금씩 아물고 있다.

평양/글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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