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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와 아이 중심의 출산을 위해 인권분만을 5년째 실천하고 있는 김상현 원장. 출산은 의료행위이기보다는 가족 모두의 축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고양/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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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엄마에게 안겨주고 탯줄 자른뒤엔 37도 물속에 인권분만을 김 원장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들여온 것은 2000년 2월이다. 그해 6월에는 김 원장을 비롯해 뜻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인권분만연구회’를 결성했다. 김 원장의 출산 문화에 대한 고민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병원에 취직해 근무하던 1984년, 그 병원에 파견 나온 미국인 여자 조산사와 이를 지도하는 의사를 만난 것이다. 그들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아이를 받았는데, 특이한 것은 분만실이 아닌 병실에서 아이를 낳도록 하는 것이었다. 산모가 분만실의 위압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우리나라 병원은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은 밖에서 대기했으나, 이들은 가족이 모두 지켜보고 참여하는 분만을 했다. 이 역시 산모의 불안을 더는 방법이었다. “의대와 병원에서 배웠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만 방법이라 많이 생소했습니다. 그런데 산모들이 훨씬 편안해했고, 아이 낳은 뒤 엄마가 바로 아이와 함께 해 아이도 훨씬 안정감을 느끼더군요. 관심 있게 지켜봤지요.” 지금은 꽤 알려져 있지만 르봐이예 분만법의 주창자인 프레드릭 르봐이예 박사의 <폭력 없는 탄생>이라는 책도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아이가 태어나서 많이 우는 것을 건강하다는 신호로 보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아이가 힘들고 괴로워서 많이 운다는 설명이지요. 의사의 입장이 아니라 아이와 산모의 입장에서 분만을 볼 것을 배웠습니다.” 이런 감명으로 1998년 병원 개원 뒤 출산문화를 바꿔 나갔다. 당시만 해도 산부인과 병원은 산모의 권한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의사의 명령대로 움직여야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기껏해야 아이를 한 번 쳐다본 뒤 아이는 바로 신생아실로 분리돼야 했다. 아이를 한 번 제대로 안아보기도 힘들었다. 보호자도 맘대로 산모를 볼 수도 없었다. 의사의 입장이 아닌 산모와 아이 입장서 분만하면
제왕절개 많이 줄지 않을까요 김 원장은 이를 개선하는 출산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먼저 자연분만을 할 수 있도록 좌식분만, 수중분만, 그네분만 등 순산을 도와주는 다양한 분만법을 들여왔다. 분만실 분위기도 가급적 보통 집과 같은 환경으로 꾸몄다. 의학적으로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면 조명도 최대한 줄였다. 어두운 자궁 안에 있던 아기가 갑자기 밝은 빛에 노출되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태어난 아기는 절대로 거꾸로 들거나 엉덩이를 때려 울게 하지 않았다. 아기의 탯줄을 자른 뒤에는 37도의 물속에 넣어줘 양수로 돌아 온 느낌을 가지게 해 줬다. 김 원장의 이런 분만 방법의 실천은 자연 분만 대 제왕절개 분만 비율로 나타났다. 김 원장은 “우리나라 지난해 상반기 제왕절개 분만율은 38%대였지만, 우리 병원은 평균 30%를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성과를 인정받아서 그는 현재 보건복지부의 제왕절개분만감소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을 정도다. 제왕절개 분만 뒤 다음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은 일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첫 아이나 둘째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은 뒤 자연분만을 원한 산모 101명 가운데 72명이 자연분만을 해 성공률이 70%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이전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았다면 다음 아이 역시 수술로 낳아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최근에는 그 원칙이 달라지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의 판단으로 자궁 파열 등의 합병증 염려가 없다면 되도록 자연분만을 권장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산모와 아이 중심의 자연분만이 산모나 아이 건강의 기초가 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출산이 가족 모두의 축제가 되도록 인권분만이 널리 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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