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살기
시절이 어수선하다. 애가 끓는다. 그래도 봄은 온다. 괜스레 피곤하고 입맛도 밥맛도 없다. 무엇을 먹어야 할까? 자연왈도(自然曰道)라. 해답은 바로 자연에 있다.
봄은 일년의 아침이다. 봄에 입맛을 잃는 것은 아침 일찍 일어나면 밥맛이 없는 것과 같다. 우리 몸이 아직 수면모드에서 활동모드로 바뀌지 않았다. 겨울에는 음 기운이 많아 모든 생물이 저장형 모드였다가, 양 기운이 많아지는 봄이 되면 활동형 모드로 바뀐다. 겨울 동안 우리가 먹은 것은 주로 알곡과 무말랭이나 배추·무 시래기처럼 저장형으로 가공된 야채다. 양 기운이 많아지는 봄이 되면 모든 알곡들은 활동형으로 바뀌어 싹을 틔워낸다. 그런데 몸은 아직 활동형으로 바뀌지 못하고 있다.
봄이 되면 우리의 몸속 장기에 자극을 주어 하나하나 기지개를 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선조들이 추천한 봄철 보양식은 오신채라는 다섯 가지 모둠나물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파, 마늘, 부추, 달래, 자총이, 유채, 무릇 그리고 미나리 새순 등이 그 대상이다. 향이 진해서 자극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고 하얀, 우리 민족의 전통색인 오방색으로 깔을 맞추어 겨자나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게 오신채 모둠나물이다. 절집에서는 오신채가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금한다. 같은 오신채를 두고 왜 우리 선조들은 봄 타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보약이라고 하고 절집에서는 먹는 것을 금하도록 했을까? 오신채의 맛과 향이 오장육부에 자극을 주어 활성화시킴으로써 잠에서 깨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신맛은 간과 쓸개를, 쓴맛은 심장과 소장을, 단맛은 비장과 위장을, 매운맛은 폐와 대장을, 짠맛은 신장과 방광에 자극을 준다. 한의학적으로도 마늘은 심장과 혈관질환에, 파는 소화와 해열·어독해소에, 부추는 간과 신장에, 달래는 위염·불면증·어혈해소 등에 효과가 있다고 되어 있다. 식욕을 돋우고 활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강장·강정제인 것이다. 오신채를 먹어 활력을 되찾게 되면 당연히 성욕도 강해진다. 바로 그 성욕이 수행자들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된다. 수행자들 사이에서는 오신채에서 따온 용어로, 여인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신채기(辛菜氣)라 부르고, 성적 욕망을 산기(蒜氣: 마늘 기운)라 하여 경계한다.
오신채가 최고의 봄철 보양식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일상이 혼밥·혼술인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차선책이 오미자차다. 시고 달고 쓰고 맵고 짠 다섯 가지 맛이 같은 이치로 봄철 춘곤증을 이겨내는 비법이 된다. 김인곤/수람기문 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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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곤/수람기문 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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