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6개월 된 딸 ‘수아(뚜아)’가 있습니다. 이제는 엄마와 아빠를 알아보고 갖가지 재롱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뚜아는 요즘 아픕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배꼽이 손톱만한 크기로 붉게 부풀어 있습니다. 예방접종을 맞출 때도, 의사는 별반 대수롭지 않은 증상이라고 설명해줬습니다. “배꼽이 아물어가는 과정”이라고만 말이죠.
그러다, 다른 소아과 병원을 가게 돼 증상을 다시 물어보았더니, “배꼽이 닫히면서 막혀야 할 요도관이 제대로 막히지 않은 것 같다”는 소견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소견서를 써줄테니 큰 병원에 데려가 보라고요. 그게 지난 10월 초였으니, 어느덧 한달 이상이 지났네요.
바로, 동네에 있는 종합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걱정이 되어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죠. 첫날 소아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소아과 진료를 받는 일도 사실 힘들었습니다. 외래 진료가 가능한지를 소아과 간호사에게 물은 뒤,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접수처에서 수십분을 기다리며 1만5천원 가량의 진료비를 납부한 후에야 5분도 채 안되는 진료를 받았으니까요.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의사의 대답은 “초음파를 찍어봐야 할 것 같다.”고만 합니다. 그러면서, ‘진단방사선과 예약을 하라’고 합니다. 또 아이를 안고 뛰었습니다.
진단방사선과에서 10월10일로 예약날짜를 받은 뒤 또다시 접수, 13만원이라는 거금(?)을 납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약날짜는 일주일 뒤, 초음파 사진을 찍고 결과를 받은 뒤에야 소아과 예약진료가 잡히니, 결국 최소 2주가 지난 후에야 증상을 알 수 있게 된 셈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병의 원인을 알고, 진료 받고 싶은 것이 모든 환자와 가족들의 소망일 겁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만약, 진료가 늦춰지는 사이 불의의 사고라도 당하면 도대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한단 말입니까? 병원을 가도 속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예약시간에 맞춰가도 환자가 많으면 1~2시간씩 기다리기 일쑤입니다. 전에는 진료비 납부하느라 예약시간보다 5분 늦었더니, “왜 늦게 왔냐?”며 면박을 준 뒤 대기 환자가 많아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결국 1시간 넘게 기다렸습니다. 진료시간, 이것도 문제입니다. 대체로 오전 10~12시, 오후 2~4시 진료가 이뤄집니다. 주말에는 진료가 없습니다. 수백만원의 월급을 받는 의사들의 평균 진료시간은 일주일에 4~8시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때를 놓치면 진료가 아예 불가능하죠.
어쨌든, 피를 말리는 2주가 흘렀습니다. 10월 18일, 이번에는 “뭔가 증상에 대한 확진을 받을 수 있겠지.” 기대가 컸던 탓일까요? 소아과 의사는 “요도관이 제대로 막히지 않은 소견이 초음파 사진 판독결과 나왔다.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건 소아과 담당이 아니다. 외과에 컨설트할 테니, 그쪽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합니다. 역시 채 5분도 안 걸립니다.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죽 늘어선 예약환자들 때문인지 그것도 녹록치 않네요. 다시 아이를 안고 외과에 가서 예약날짜를 받았습니다. 또다시 1주일 뒤로 잡혔네요. 10월 25일. 그냥 허송세월하면서 일주일을 버텨야 합니다. 소아과 의사 말로는 “갑작스런 감염 등의 증세가 오면 패혈증으로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애가 탑니다. 그래도 의사 앞에서 주눅들 수밖에 없는 게 환자의 입장 아닙니까?
답답한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외과 의사... 25일날 드디어 만났습니다. “이제는 증상을 알 수 있겠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요? 의사는 “(갸우뚱하더니)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우선 항생제를 1주일간 먹여본 뒤 판단하자.”며 처방전만 내줍니다. 질문할 시간도 안줍니다. “됐으니, 나가라!”는 말에 말문이 닫혀 버렸습니다. 1만원 이상의 진료비를 낸 환자에게 너무나도 무심한 처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다시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정확히 11월1일 외과의사를 두번째로 만났습니다. 일주일간 정성껏 “먹지 않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 먹였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외과의사, “요도관 문제이니, 내가 담당할 부분이 아니다.”라며 “비뇨기과로 가라”는 짤막한 소견을 냅니다. 질문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말이죠. 이 의사는 소아과 의사보다 더 사무적인 말투, 환자를 무시하는 태도가 역력합니다. 쩝~ “내돈 1만2천원을 돌려줘!!!”라고 호소하고 싶어집니다.
외과 진료가 끝나자마자 아이를 안고, 비뇨기과에 갔습니다. 역시나 이날 진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11월10일 예약을 잡아 줄테니, 그때 오라고 합니다. 그때 되면 우리 뚜아의 증상에 대한 확진을 받고, 본격적인 치료를 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의문입니다. 병원을 옮겨볼까 고민도 했지만, 그게 어디 쉽습니까? 다른 종합병원들의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이 병원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고, 뚜아의 차트를 내주지 않을테니 처음부터 다시 진료를 시작해야 하니까요. 그럼 최소한 앞으로 1달 이상 더 지체해야 합니다.
종합병원이라는 곳, 처음 가봤습니다.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 것인지, 안쓰럽습니다. 한편으로는 “나처럼 저 사람들도 입원 또는 수술, 치료하는 과정에서 애간장을 태웠겠지?”라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병원이란 어떤 곳입니까? 환자가 왕으로 대접받고, 치료받는 곳 아닙니까? 환자는 치료의 대가로 정당한 치료비를 납부하는데, 병원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치료는 기대에 못 미칩니다. 정말 실망입니다.
어제 신문기사를 보니, 심장에 피가 통하지 않아 심장 근육이 괴사하는 ‘급성심근경색’ 환자가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가도 3명 중 1명만이 막힌 혈관을 긴급히 넓혀주는 시술(재관류 치료)을 적정시간 안에 받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상 종합병원의 무성의 때문에 환자들의 70%가 제때 치료를 못 받고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면서 종합병원은 어떻습니까? 횡포는 말도 못합니다.
예약진료라는 이유로, 진료비를 선납으로 받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진료비도 일반 병원의 3~5배에 달합니다. 3차 진료기관에 대한 진료비 가산율(종합병원의 경우 25%)을 감안해도, 특진이라는 명목으로 진료비의 몇배를 받기도 합니다. 특진은 대체로 한번 진료비가 2만원이 넘습니다. 특진을 받고 싶지 않아도, 일반의가 없기 때문에 특진료를 내야 한다고 종용하기도 합니다.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선택 진료제(일명 특진)’가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만 가중”시키며 병원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선택진료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환자는 일반 진료 때보다 많게는 2배 가까이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합니다. 대학병원 등에서 선택진료 의사밖에 없어 환자가 어쩔 수 없이 선택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환자 본인이 신청해야 할 선택 진료를 담당 의사가 임의로 선정해 환자도 모르게 선택진료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한편, 건강세상네트워크는 현재 선택진료 폐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선택진료 폐지 캠페인 바로가기)
이것 뿐입니까? 만약, 응급실에라도 실려가면 별도의 병원비가 추가됩니다. 그러면서도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무성의합니다. 입원을 하려고 하면? “입원실이 없다.”며 8인실이나 6인실 대신 2인실이나 1인실을 추천합니다. 완전 ‘돈먹는 하마’입니다.
종합병원은 개선해야 합니다. 전적으로 환자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우리 뚜아는 그나마 급하지 않은 환자이지만, 더 급한 환자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어야 합니다. 외래진료 시간이 아니라고, 진료를 회피하거나 수련의가 대신 치료하게 해 생명에 위협을 받는 일도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환자들이 나서야 합니다. 2~3시간을 기다려 1분도 채 안되는 진료를 받는 일, 예약이 늦춰지면서 환자에게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합니다. 종합병원의 횡포 더는 그냥 두어서는 안됩니다.
어쨌든 뚜아의 증상은 최소 다음주가 되어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료를 받아도, 확진을 받고 치료가 가능한지 현재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결국에는 병원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렇게 제가 무기력한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하루하루 뚜아를 볼 때마다 죄책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을 따져보니, 30만원이 훌쩍 넘어섰습니다. 1달 반 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뚜아의 증상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진 것도 없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종합병원 다니기 싫습니다. 뚜아의 배꼽을 동네의원에서 치료해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요즘 뚜아는 감기에도 걸렸습니다. 그래서 감기는 동네 소아과에 다니며 치료하고 있는데 진료비도 저렴하고, 친절합니다. 궁금한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고요. 더 위중한 환자들을 위해 간단한 질병은 동네 의원에서 치료받으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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