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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낮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한 황우석 교수가 취재진과 만나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논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후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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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우석씨‘에서 ‘학술대담 거부’까지
세계줄기세포 연구의 선두주자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는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뉴스메이커'이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뉴스 가치를 인정받아 신문과 방송, 인터넷 공간을 통해 크게 다루어진다.
물론 황 교수의 연구성과가 그만큼 엄청난 파급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언론의 이상 열기에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도 한몫 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얼굴에는 항상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긍정적인 사고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가히 '친절한 우석씨'라 불릴 만하다.
그의 친절에 얽힌 일화는 이루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과학계에 첫발을 내디딘 초보 기자가 거의 해독 불가능한 용어로 가득한 과학자료에 기가 질려 있을 때 그는 쩔쩔 매는 그 기자 한 명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연구현황을 설명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내 과학계를 통틀어 이처럼 친절한 과학자는 건국이래 없었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자신의 명예욕을 위해 그러는 게 아니냐며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간 황 교수의 일관된 행적으로 봤을 때 천성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지 결코 사심에서 비롯된 것 같지는 않다.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느긋한 표정의 황 교수가 최근 한달 사이에 부쩍 쫓기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언행을 보이고 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일단은 가톨릭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자신의 연구에 쏟아지는 윤리적 비난과 사회의 지나친 관심에 대한 피로감의 표출로 풀이된다.
하지만 수세에 몰린 듯한 황 교수의 연이은 언행들이 최근 '형제'처럼 지내던 미국 피츠버그의대 제럴드 섀튼 교수의 느닷없는 결별 선언을 미리 내다보고 우려하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대변한 것은 아니었을까.
황 교수의 최근 언행을 통해 그의 내면 세계를 엿본다.
◇ "봉사자로서 능력의 한계를 최근엔 절감한다"
황 교수의 언행에 특이징후가 처음 외부에 공개된 것은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2005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의 주빈국 행사 일환으로 지난달 22일 독일 마인츠 시에서 열린 'IT/BT아이디어 포럼'에서 였다.
황 교수는 이 포럼에 참석하기에 앞서 잠시 짬을 내 연합뉴스와 단독으로 만났었다. 여기에서 그는 최근 심정의 일단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는 과학자로서 소명을 묻는 질문에 "나에겐 하나의 시대적 사명이 있다. 그것은 숭고한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 연구팀에 동참했거나 앞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 강한 우리 과학자들의 심부름꾼 역할을 잘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연구를 진척시켜 우리의 과학이 진정 전세계 인류로부터 칭송과 찬사를 받는 과학 걸작품을 탄생시키도록 봉사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이런 봉사자로서 능력의 한계를 최근엔 절감한다. 50대 중반이고, 심오한 학문적 바탕이 필요한 봉사자로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역할에 한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마음 속에 있는 말을 쏟아냈다.
황 교수는 나아가 "적절한 시점에 훌륭한 리더가 될 분이 안팎에서 자청해서 나서주면 그분께 이제는 바통을 넘겨야 될 때가 가깝지 않았나 싶다"고까지 말했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황 교수의 입에서 처음으로 터져나온 의외의 '폭탄성' 발언이었다
◇ "어떤 때는 높은 곳에 올라가 목이 터져라 외쳐보고 싶을 때도 있다"
이후 황 교수의 언행 수위는 점점 더 높아졌다.
황 교수는 독일 마인츠에서 심경토로가 있은 지 일주일만인 지난달 29일 강화도 전등사에서 열린 '2005삼랑성 문화축제'행사에 초대손님으로 출연해 "현재 과학계가 많이 어렵다"며 "어떤 때는 높은 곳에 올라가 외쳐 보고도 싶고, 외길을 걷는 것 때문에 이렇게 많은 시련에 부딪힐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이어 마음에 품고 있는 지침이나 가르침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황 교수는 "세상에 이름이 두 배 알려지면 네 배를 낮춰야 하고 지위가 두 배 높아지면 여섯배 겸손해야 하지만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개인적 처신의 어려움을 내비쳤다.
◇ 생명과학 기업 주관 학술대담에서 발길 돌리기도
황 교수의 날선 듯한 언행은 계속 이어졌다. 한 생명공학 기업 주관으로 지난 7일 오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생명공학의 미래' 주제의 학술대담에 참석키로 하고 현장에 왔다가 갑자기 발길을 돌려 버린 것.
황 교수는 이 자리에서 일본 게놈연구의 대가인 나카무라 유스케 도쿄대 의대 교수와 대담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보고는 행사장을 박차고 떠났다.
지금까지 황 교수가 이처럼 '예의'에 어긋난 불친절한 행동을 보인 적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기업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비쳐질 것 같아 부담을 느낀 나머지 튀어나온 행동으로 풀이되지만 예전의 여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서한기 기자 shg@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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