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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09 07:00 수정 : 2017.08.09 07:00

수련 지금 여기서/태극의 흐름, 가새잽이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눈을 감고 합장한 채, 마음을 비우면서 천천히 입허(入虛)의 상태로 들어간다. 마음속에서 맑고 고요한, 너른 공간이 펼쳐진다. 그 공간은 비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근원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상태에서는 뭔가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적막하다.

변화를 이끌어낼 최초의 동력을 부여하자. 눈을 뜨고 합장했던 손을 비벼 틀면서 두 손 끝이 이루는 각이 90도가 되도록 만들어보자. 한쪽 손등이 아래를 향하게 하여 아랫배 높이까지 지그시 내리누르는데 이때 손바닥끼리 서로 밀어내는 맞심을 가볍게 준다. 충분히 눌렀으면 힘을 풀고 손바닥을 붙인 채로 두 손을 비벼 돌려 위치를 바꾼 다음 반대편 손등으로 누른다. 마지막 순간에는 펼쳤던 손가락을 감싸쥐면서 두 손을 꾸욱 맞잡는데, 이렇게 마주잡은 손 모양을 가리켜 가새잽이라 한다. 가새란 엑스(X)자로 교차한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경상도에서는 가위를 가새라고 부른다. 가새잽이로 손을 맞잡는 순간 팔 근육은 물론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가면서 견고한 모습이 된다. 이는 맺음과 결실, 신념과 신뢰를 상징한다. 간절한 기도의 순간, 확신에 찬 제스처를 보일 때, 혹은 누군가 나를 믿어주기를 바랄 때 이처럼 손을 꽉 맞잡게 되지 않던가.

가새잡이

합장이 영에 수렴한다면 가새잽이는 무한한 변화를 예고한다. 손 모양에 익숙해졌으면 이제 흐름을 만들어낼 차례다. 원리는 간단하다. 검으로 베는 동작을 연상하면서 맞잡은 손으로 이리저리 그어본다. 칼날에 해당하는 손날 쪽으로 베거나 그 반대쪽으로 걸어 드는 것을 기본 움직임으로 삼고 가로, 세로, 하향 빗각, 상향 빗각 등 여러 방향으로 응용해 보자. 자유롭게 시도하다가 괜찮은 움직임이 도출되면 그것을 표준화하여 반복하면 된다.

가새잽이는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움직임의 이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무술적 움직임의 다양한 모습이 가새잽이의 흐름 안에 원초적 형태로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 개화되지 않은 꽃봉오리라고 할까. 움직임이 막다른 곳에 이르러 더 진전할 수 없게 되면 손을 바꿔 잡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열거나 들어갔던 방향의 반대로 빠져나오면서 계속해서 흐름을 이어나간다.

가새잡이

 손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끊임없이 태극의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새잽이를 한자로는 태극인(太極印)이라고 쓴다. ‘인’은 각인한다는 뜻으로 태극의 기운을 몸 안에 새겨 넣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가새잽이 수련에서는 기운이 밖으로 발출되지 않고 압력밥솥처럼 내부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가지런히 모은 손은 아직 분화되지 않은 무극의 상태다. 다채로운 흐름으로 펼쳐졌던 움직임은 근원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작은 이기심에 안착하거나 혹은 ‘트이지’ 못한 채 그저 닫힌 세계에서 바삐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태허와 태극, 이 둘은 항상 같이 있으면서 서로에게 존재의 실마리를 구하는 관계여야 한다. 우리 삶의 모든 장면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영원한 숙제이다.

글·사진 동영상/ 육장근(전통무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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