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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3 14:05 수정 : 2005.11.23 14:40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가 2005 세계기술네트워크(WTN) 생명공학상을 받은 뒤 지난 17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돌아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15평의 지하실 방에서, 치매에 걸린 노모, 이제는 육체노동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든 고졸학력의 부부, 이미 장성한 아들 셋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세 아들 중 장남은 가족들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는 물론 고학을 하며 대학과정을 마쳤지만, 근력이 쇠퇴하기전 부부는 이 아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으며, 두 동생도 기꺼이 이 안타까운 편애를 이해했습니다. 정신이 온전하던 시절에 할머니는 '구두쇠'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쟁이 깊숙한 곳의 쌈지가 열리던 날, 장손을 위해 할머니는 폐품을 모으던 그 수레에 유명하다던 컴퓨터를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장남은 동네의 신화였습니다.

이 일화는 제 사촌형님의 이야기입니다. 눈물겨운 자수성가라고 하기에는, 또 너무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친척 모두에게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가난이라는 환경에서 놀라운 구심력을 보여준 가족 전체가, 저에게는 경외의 대상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신화'에 대한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제 눈에 비친 형님은 이미 신화가 아닌 '신' 그 자체의 존재였습니다. 아버지께도 쓰지않던 높임법을 형 앞에서는 좀처럼 놓을 수 없었습니다. 아래의 두 형님들과는 잘 어울리면서, 큰 형님과는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존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번 황우석 박사의 연구와 관련한 여러가지 잡음을 보면서 무심코 떠오른 기억입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황우석 박사 연구의 비난 여부가 아니라 바로 시민과 사회의 반응입니다. '국익을 위해서 보도를 막아야한다.'는 누리꾼들, 줄을 잇고 있다는 난자기증운동, 서구의 생명과학계와 관련한 음모론 등, 어찌보면 이러한 반응은 낯설지 않습니다. '삼성 X파일'도 그랬고, '대북 비자금'도 그랬습니다.

저도 때로는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때로는 '누군가 튀거나 앞서나가는 것을 그냥 두지 못하는 한국인의 정신구조'로 시계추처럼 움직이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오늘에야 이 모든 양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경제적으로 결핍된 시절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누구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황 박사의 업적에 부화뇌동하던 언론, 신임박사들의 연구비를 유보하고 황 박사의 지원을 아끼지않던 정부, 황 박사도 모르는 방법으로 연구용 난자를 모은 노성일 이사장, 한 언론사의 취재보도를 막아야한다는 누리꾼들, 난자기증의 의미와 위험도 모르면서 황 박사를 위해서 난자를 얼마든지 바치겠다는 기증자들, 그들의 선의와 진심을 이해합니다. 저도 그들과 같이 이 가난한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팀한테 연구용 난자를 제공한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강서미즈메디병원에서 기자회견문을 읽은 뒤 “인류의 의학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황우석 박사와 사촌형님의 오버랩은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음을 남깁니다. 신화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사기'와 '날조'라는 섬뜩한 괴물이 버티고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의 신화를 정말로 지키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의혹을 지금 묻어버린다면 황우석 박사를 끝까지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황우석 박사의 성과는 절대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연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과정상의 오점을 지금 씻어내는 것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유년 시절부터 사촌 형님께 가졌던 기억과 공명하던 황우석 박사에 대한 경외감을 결코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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