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의 도덕적 가치관의 현 주소 황 교수의 불법 난자채취 문제는 이제 대표적 과학잡지인 네이쳐에서도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사안으로 등장하였다. 반면 외국 언론의 도덕적 문제 제기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황 교수의 연구 성과에 대한 시샘이나 줄기세포 연구의 주도권 쟁탈을 위한 음모쯤으로 일관하였다. 애초 황 교수의 연구 주제 자체가 윤리적 논란의 소지를 안고 출발했지만 도덕적 윤리적으로 신의 영역에 대한 경외감이 둔감한 한국은 이런 윤리적 논란 보다 연구가 성과가 가져올 부가가치에 더 관심을 가졌기에 황 교수의 연구가 윤리적 논란에 휩싸이지 않고 순탄한 항진을 해 올 수 있었다. 불법난자 채취에 대한 갖가지 의혹이 조기 진화 되지 않으면서 이 문제에 대한 세인의 반응도 갖가지이지만 그 중 대표적으로 우리의 도덕적 현주소를 반추할 수 있는 반응은 “그깟 난자 좀 쓰면 어때서..”이다. 우리나라는 개신교 신자가 천만이 넘는다고 하고 카톨릭 신자가 6백만이 넘는다고 한다.기독교는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을 신봉하는 종교이고 황 교수의 연구는 ‘신의 영역에 대한 인간의 중대한 도전’으로 비쳐줘 윤리적 논란이 드세게 일었어야 하지만 , 어떻게 된 일인지 한국의 종교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아마도 많은 수의 기독교인조차도 “그깟 난자 좀 쓰면 어때서..”란 세인들의 반응에 심리적으로 동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윤리적이거나 비도덕적인 것을 “그깟”이란 한 마디로 일축할 수 있는 도덕적 불감증이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도덕적 현 주소 이다. 황 교수는 솔직해져야 이 문제는 황 교수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도덕성 문제로 비화하였다.처음부터 한국의 언론들은 황 교수의 도덕적 책임 보다는 ‘왜 섀튼이? , 왜 미국의 언론이 ?’ 라는 부분에 사건의 초점을 맞춤으로서 황 교수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국제 사회가 한국 사회에 대한 도덕적 불신만을 증폭시키는 촉매로서 작용하였다. 황 교수가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해명하고 진상을 밝히지 못한다면 앞으로 이어질 황 교수의 연구나 한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줄기세포허브’사업은 결국 국제사회의 냉대 속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다. ‘천만달러의 소녀 위 성미’가 치룬 혹독한 프로 데뷔전 을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실수였을 지도 모르는 규정위반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표독하게 결백을 주장한 위 성미는 불과 하루 만에 실격처리 되었다.위성미가 실격된 후 ‘룰을 존중 한다’ 는 입장을 밝혔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그나마 자신을 위해 다행스런 일이다. 만약에 같은 일이 또 한 번 반복된다면 그 결과는 위성미가 프로선수로서의 골프인생을 접는 결과로 마무리 될 것 이다. 이번 논란을 불식시키는 가장 중요한 해법이 황 교수의 솔직한 고백에 있음을 황 교수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제까지의 잘못은 실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거짓말은 전혀 다른 이야기 이다.거짓말은 그 사람의 신뢰에 관한 문제이며 황 교수의 진실게임은 이젠 우리 사회의 신뢰에 관한 문제로 비화하였다.그래도 “그깟 난자 좀 쓰면 어때서..”라고 일축할 수 있을 것 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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