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는 '네티즌'들이 무지해서 발생한 것도 아니고 단지 황우석 교수를 '동정'하거나 피디수첩의 기분나쁜 '행태'에 분노해서 발생한 것도 아니다. 필자는 이번 '안티 피디수첩'의 원인이 더 깊은 곳, 이른바 '네티즌'들의 일반적 정치의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정치의식이 크나큰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필자와 의견의 궤를 같이하는 이들은 맹목적 '애국주의'와 '국가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옳은 주장이다. 어떤 누리꾼이 잘 지적했듯이 '국익'을 위해 '윤리'따위 집어던지고 사실을 사실이라 얘기할 수 없다면 일본 우익들의 침략전쟁 정당화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자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므로 상관하지 말아야 하는가? 아니면 완전한 막무가내 이중잣대를 들이대야 하는가? 하지만 맹목적 '애국주의'와 함께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이 있다. 그것은 별 지적이나 문제의식 없이 널리 퍼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적 합리주의'이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경제학적인 의미에서의 '합리성'(rationality)은 수단(means)의 합리성을 뜻하는 것일 뿐 목표 자체의 합리성 혹은 윤리성과는 별 관련이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대안은 없다'는 체념과 더불어 경제학적 '합리주의'가 도를 넘어서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경제적 요소 외의 다른 것들, 윤리나 환경이나 반전 등의 논점은 이야기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것으로 낙인찍힌다. 1등 기업 총수 일가의 어마어마한 규모의 탈세와 비리를 비판하면 1등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켜 경제에 해를 끼치므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고 천성산 도룡뇽을 지키자면 "2조원의 혈세"가 들어가므로 혼자서 조용히 천성산 터널 반대 단식을 한 지율스님은 어느새 '공적'이 되고 만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 보도도 '국익', 즉 '경제적 이득'을 위해 아예 존재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논리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식의 논리로 줄기세포 기술이 연구될 경우 작년 초 백혈병 환자들에게 '기적의 신약'인 '글리벡'을 1인당 월 3백~6백만원에 판매하려다 빈축을 산 '노바티스'사의 행태를 다시 답습하게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마지막으로 황우석 교수가 솔직히 사과하고 책임진 것에 대해 우선 경의를 표한다. 변명과 회피는 오히려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더욱 더 신뢰도에 큰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줄기세포 기술 연구가 진척되면 진척될 수록 더욱 더 윤리성과 신뢰도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거세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이번 문제는 언제까지 감추고 있는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또, 더 오래 감출 수록 좋은 것도 결코 아니었다. 황우석 교수의 사과는 비록 '기회비용'은 컸지만, '매몰비용'에 대한 미련으로 더 큰 손실을 입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현명한 처신이었다. 또한 같은 견지에서 피디수첩의 보도 역시 MBC사의 입장에서 볼 때 비록 경제학적으로는 조금도 '합리적'이지 않았지만 그 기여를 마땅히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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