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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8 13:53 수정 : 2005.11.28 17:02

황우석 교수팀이 연구에 사용한 난자들 가운데 연구원의 난자도 있고, 불법 매매된 난자도 있었다는 것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 ‘매국노’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또 그놈의 ‘국익’이다. 내 경험 상 ‘국익’은 항상 떳떳하지 못한 행위에 대한 변명으로 다가왔다. 떳떳한 행위에 대해서는 ‘국익’을 꺼낸 적이 없는 것 같다. 검찰이 최근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을 구속하지 않은 이유로 내세운 것도 ‘국익’이었다. 그걸 보면서 ‘국익’ 앞에서는 모든 것이 초라할 뿐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국익’은 사회적 논란이 있을 때 가장 큰 ‘무기’로 나타난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도 그랬다. 결국 한국군은 이라크에 갔다. 단적으로 말하면, 나는 언론이 ‘국익’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예 ‘국익’이라는 말 자체를 언론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에둘러서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결국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비겁하다. 언론의 기본 관점은 ‘국익’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자유나 인권 등이 되면 모를까. ‘대한민국’이라는 틀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2000년께 <한겨레21>에 있을 때,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양민학살에 관해 여러차례 보도한 적이 있었다. 일부 참전군인이 한겨레신문사에 몰려와 차량 등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때 참전 군인이나 정부 부처의 논리가 ‘국익’이었다. 또 왜 아픈 상처를 건드리느냐, 몇십년이 지나 우리 잘못을 드러내는 것이 도대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나 참전 군인이 ‘당신이 그때 전쟁터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라고 물어오면,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국익’을 앞세운 논리는 터무니 없었다. 당시 한 교수는 이런 표현도 썼다. ‘깡패’.

국익에 보탬이 되는 것에는 좋은 행위도 있고, 나쁜 행위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관점으로만, 국익의 관점으로만 보면, 경제성장 등 국익에 도움이 됐으니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한 모든 행위는 다 정당화된다. 베트남 사람의 눈으로 한번 볼 필요가 있을까.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베트남전 양민학살 보도와 황우석 교수팀의 경우는 다르다. 어느 누구도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가 ‘깡패적’ 국익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과정에서의 문제에 대한 보도가 단순히 황우석 교수를 흠집내려 하는 것도 아니고, 국익을 해치려 한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황우석 교수의 연구과정에서 문제점은 없었는지를 검증하는 언론의 기본 자세에 충실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거꾸로 독자나 시청자가 검증해야할 대목은 언론이 제대로 문제점을 짚어냈는지 여부다. 그런 차원의 비판이라면 어느 언론도 기꺼이 수용할 것이다. 나는 기자는 이런 사람이라고, 아니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99명이 행복하다고 하고, 1명이 불행하다고 했을 때, 기자는 그 1명의 눈으로 세상과 사태를 봐야 한다.’ 내가 항상 이렇게 기자 노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제발 언론을 ‘국익’에서 자유롭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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