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수첩>에 돌팔매질하는 네티즌에게
요즘 황우석 교수에 대한 비판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보통 담력으로는 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그가 연구원의 난자사용 여부를 묻는 영국의 네이처지의 물음에 ‘연구원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거짓 답변을 보낸 것에 대해서도, 그가 시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네티즌으로부터 불화살에 고슴도치가 될 상황이다. 지난 22일 황교수 연구팀의 난자의혹을 다룬 MBC PD 수첩에 비난을 퍼붓는 네티즌의 광기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 우리 사회를 붉게 물들였던 반공주의 광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다. 이 나라가 전체주의 국가로 나아가려는 징조인가. 이번 경우엔 도가 지나쳐 광고가 모두 취소되고 PD수첩이 광고없이 방송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납득할 수 없는 네티즌들의 행태다. ‘반공’ 광기보다 더 한 ‘네티즌’ 광기정말 MBC PD수첩이 그렇게 크게 잘못했는가. 황우석 파동을 잠깐 냉정하게 되돌아 보자. 일반적으로는 지난 11월 12일 미국의 섀튼 교수가 느닷없이 결별을 선언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황 교수 연구팀의 난자의혹은 이미 작년 4월에 영국의 네이처지에서 황 교수 연구팀의 (난자를 제공한) 연구원과의 인터뷰를 근거로 제기한 이후 국제적으로는 계속 논란거리가 되어 왔었다. 다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동안 국내에서도 생명윤리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꾸준히 해명을 요구해왔는데도 황교수는 계속 이를 부인해 왔다. 그는 나중에 밝혀진대로 적어도 작년 5월에 팀소속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네이처지에 허위로 답을 했으며, 그후에도 계속 “숭고한 뜻을 가진 여성”들로부터 “금전적 보상없이” 기증받은 난자라고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그러다가 황교수의 줄기세포 연구팀에 난자를 제공한 모 병원의 관계자가 실토를 한 후, 그리고 MBC PD 수첩에서 보도를 하자 어쩔 수 없이 시인했던 것이다. PD수첩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이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찾아, 진실을 밝히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그런 프로그램에서 제보를 근거로 수개월 ‘난자의혹’을 추적하고 있었고,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떠도는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하고 고민 끝에 방송을 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왜 네티즌이 얘기하는 ‘국익’의 개념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국익’은 네티즌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일부에서는 PD수첩 방송으로 야기된 네티즌과 MBC간의 갈등을 ‘진실’과 ‘국익’ 논쟁으로 이야기하는 모양이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진실’과 ‘국익’ 논쟁이라는 말에는 그 두 가치가 대척점에 서로 배타적으로 서 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정말 MBC PD수첩이 오직 진실만을 추구했는가. 네티즌들이 얘기하듯 ‘국익’은 팽겨쳤는가. 결론적으로 PD수첩은 ‘진실’과 ‘국익’ 모두 취한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단지 두 가치의 실현 시점이 장단기라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 ‘진실’과 ‘애국’ 모두 취한 MBC PD수첩 우선 취재결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방송하지 않는다면 그 프로그램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서의 간판을 내려야 할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섀튼 박사가 전모를 파악하고 결별을 선언한 이후다. 그러니 MBC로서도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에서 이미 섀튼의 결별 사유를 알았고, 당시 MBC에서 방송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혹이 덮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을 안 했다면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의혹해소 요구는 끈질기게 계속될 것이고, 이 추문은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결국 부인에 부인을 거듭하다가 타의에 의해 밝혀지는 과정을 밟았을 것이고, 황교수 개인에 대한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에게 ‘믿지못할 한국’(dishonest Korea)이라는 딱지가 붙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었다. 지금의 상황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상황을 맞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MBC PD수첩 보도로 인해 황 교수가 시인을 하고, 사과하는 시점이 앞당겨졌고, 그로써 세계의 여론이 그나마 잠잠해졌다. 지금의 국제 학술계의 반응은 대체로 “이해는 하지만, 비판없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라고 한다. 부정적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황 교수가 더 큰 상처를 입고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대로 더 크게 이미지가 손상되는 상황이 오기 전에, 황 교수의 시인과 사과로 그나마 파국을 면한 것이다. 그것이 의도했든 안 했든 PD수첩이 행한 ‘애국’의 한 단면이 아닌가. 그러니 일부에서 주장하듯 PD수첩이 진실의 편에만 선 것이 아니라, 진실의 편에 서서 ‘국익’도 취한 것이다. 그렇게 MBC PD수첩을 방송하기로 한 판단은 옳았다고 할 수 있으며, 세계적 의혹의 참화에서 그나마 황 교수와 우리나라를 구한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MBC PD수첩은 우리 사회 한구석에나마 다행히 그런 정도의 자정능력은 지녔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었으며, 이 점도 높이 살만한 ‘국익’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 우리 사회의 자정능력 보여준 MBC PD수첩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전된 데는 안타깝지만 황우석 교수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사실로 밝혀진 의혹에 대해 그는 연구의 최종 책임자로서 모든 사항을 확인에 또 확인을 거쳐야 하는 책무가 있었던 것이다. 설혹 몰랐다 하더라도 도의적 책임은 남게 된다. 더구나 네이처지에서 의혹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 물어왔을 때 거짓으로 답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그의 치명적 실수였다. 그런데 결국은 어떤 경로를 통하든 밝혀질, 황우석 교수에 불리한 사실을 PD수첩이 밝혀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렇게 다중이 돌팔매질을 하는 것은 분명 온당치 않은 일이다. 네티즌들은 “그것이 뭐 대수냐”고 말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황 교수가 그의 논문을 우리나라의 생명공학 학술지가 아닌, 세계의 권위지인 사이언스지에 실은 이상 해서는 안 될 소리다. 논문은 세계 최고의 저널에, 윤리기준은 우리 정서대로? 황교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로 급부상한 데는 그의 논문이 사이언스지의 표지를 장식한 사실에 기인한 바 크다. 한국의 생명공학 학술지에 실었더라면 그렇게 주목받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네티즌들이 바라는 대로 세계적 학자가 되려면, 앞으로도 사이언스나 네이처같은 세계 유수 학술지에 계속 논문을 실어야 한다. 그런데 논문은 세계 최고권위의 학술지에 실어놓고 그 잡지가 요구하는 기준은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들어 “그건 당신네 기준이고, 우린 아무 문제없습니다. 하던대로 그냥 연구나 계속 하겠습니다”라고 강변한다면 그들은 무어라 하겠는가? “그게 당신네들 기준라면 당신들 기준대로 하십시오. 그 대신 앞으로는 우리 저널에 기고하지 말고, 우리하고 아는 체 하지마세요” 할 것이다. 그러면 황우석 교수는,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우리 생명과학계는 세계무대에서 아웃되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국가적으로 돈을 퍼붓고 난리를 쳐도 소용없는 상황이 된다. 그것은 우리 네티즌들이 바라는 상황인, 황교수가 세계에 우뚝 서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초래한다. 결국 네티즌이 지금 보여주는 행태는 황우석 교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락으로 등떠미는 것일뿐이다. 지금 인터넷에서 황우석 교수를 돕자며 나서는 네티즌들, 윤리문제의 제기에 대해 ‘매국’이라며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황우석 교수를 나락으로 등 떠미는 네티즌 우리 국민은 프로골퍼 미셸 위가 프로입문 첫 경기에서 당한 쓰라린 경험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엔 정말 하찮은 것이었다. 미셸 위도 알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공을 어디서 드롭하건 그게 우리 일반인에겐 무엇이 그리 대수란 말인가. 그러나 규정을 위반한 것은 엄연한 사실. 마침내 미셸 위는 실수를 인정했고 사과를 했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은 그렇게 우리 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프레이어들에게 요구되는 기준을 일반인이 안다는 것이 오히려 무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기준을 잘 모른다고 해서 그녀에게 “미셸, 우리는 이해한다. 너는 아무 잘못없으니 열심히 해서 세계 골프계를 제패해라”고 했다면? 세계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 아닌가. 만일 미셸 위가 그렇게 따라했다면 그녀는 아마 세계 골프계에서 더 이상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것이다. 황 교수에게 세계 생명과학계의 ‘기준’ 무시하라고 주문하는 네티즌 황교수를 아끼는 네티즌들은 지금처럼 흥분해서 MBC에 돌팔매질을 할 것이 아니라 차분히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과연 네티즌이 생각하는 ‘국익’이 무엇인지. 무엇이 진정 황교수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길인지를. 윤리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네티즌들이 생각하는대로 황우석 교수의 학문적 업적에 질투나고 배가 아파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의혹이 있으면 앞으로 진전할 수 없다. 의혹을 분명히 밝혀서 세계 과학계를 납득시키고, 앞으로는 책잡힐 일 하지 말고, 조금 더디더라도 확실하게 지킬 것 지켜가면서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게 결국은 머리 보면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줄기세포 연구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세계 윤리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과학연구는 지금 우리가 보았듯이 그 성과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릴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할 것을 안 지키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비싼 값을 치루면서 배우고 있다. 그러니 오히려 그들이야 말로 황우석 교수를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세계 윤리기준 준수요구, 장기적으로 황 교수 도와주는 것 네티즌의 황 교수를 위하는 충정, 나도 이해한다. 황 교수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리고 우리가 자칫 잘못해서 황 교수가 더욱 곤경에 빠지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도 있다. 그래서 나도 황 교수에게 힘내시라고, 용기백배해서 다시 일어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 과학계의 의혹을 우리가 말끔히 해소하고 앞으로는 세계기준에 맞추어 연구를 충실히, 거짓없이 진행하겠다는 것을 보인 후에 할 것이다. 그래야 그에게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과학계가 황 교수에게 보내는 의혹의 눈길이 조금이라도 남는 한 예전의 황교수의 위상은 되찾기 어려울 것이다. 신뢰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고, 의혹 한점없이 연구를 수행해서 최고의 논문을 보내도 우선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것이다. 그러니 일단 그들의 의심을 거두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익’이다. 지금 MBC PD수첩에 돌팔매질을 하는 네티즌들은 그 ‘맹목적인 사랑’이 오히려 황우석 교수의 국제적 입지를 좁히고, 중압감에 질식하게 하지는 않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네티즌들이 나의 이 얘기를 정 이해하지 못 하겠다면, 내가 내기를 제안하겠다. 누가 정말 ‘애국’을 하고 있는건지 흥분을 거두고, 판단을 유보하고, (황우석 교수 돕기는 계속하되) 딱 1년만, 아니 반년만 기다려보자. 그때도 네티즌의 지금처럼 ‘애국’하는 방법이 옳다고 판명된다면 내가 백배 사죄하겠다. 황교수, 우리가 잃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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