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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잎에서 뿌리, 죽순까지 온통 약 |
대나무는 매화·난초·국화와 더불어 사군자로 불린다. 매화는 이른 봄 늦추위를 무릅쓰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꽃을 피우기 힘든 난초는 은은한 향기가 비할 데 없고, 국화는 늦가을에 첫 추위를 이겨내며 피고, 대나무는 엄동설한에 맞서는 고고한 푸르름으로 뜻을 굽히지 않는 강인함을 지녔다. 각 식물이 가진 특징을 덕과 학식을 갖춘 사람, 즉 군자의 성품에 비유한 것이다. 그럼에도 대나무는 살림집 가까이 무리를 이루어 흔하게 생장한다는 이유로 조금 낮게 평가받는다. 우리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대나무를 사군자에 포함시켰을까. 아니다.
매·난·국 세가지가 군자의 정서적 측면을 상징한다면 대나무는 군자가 자칫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적 측면을 상징한다. 우선 일상생활에서 대나무만큼 다양하게 활용되는 소재도 흔치 않다. 각종의 생활용기를 만드는 소재이고, 거동이 어려운 서민들에겐 지팡이가 된다. 집집마다 빨랫줄을 받치는 바지랑대인가 하면 심지어 집을 지을 때 황토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벽체 내부 구조물로 반드시 필요한 건축자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대나무가 가진 자식 사랑이다.
대나무의 자식은 죽순이다. 음력 4월의 절기인 소만 무렵이 죽순의 제철이다. 소만은 ‘만물이 왕성하게 자라나 가득 찬다’는 의미다. 모든 초목이 앞다퉈 산하를 푸르름으로 채워가는 시기지만, 대나무는 색이 누렇게 변한다. 죽순에 영양분을 공급하느라 어미인 대나무는 영양실조 현상을 겪는다. 생명의 정수인 정기를 자식에게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를 대나무의 가을, 죽추(竹秋)라고 부른다. 겉으로는 엄하기만 한 아버지들의 가슴속에 자식에게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군자의 진정한 내면적 도리라 믿었다.
대나무 잎은 폐렴·기관지염·당뇨병·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에 좋다고 전한다. 대나무에 열을 가해서 얻은 진액인 죽력은 중풍을 낫게 하고 가슴속의 화와 번민을 삭여준다. 속껍질인 죽여는 천식에 좋고 뿌리인 죽근은 달여 먹으면 번열과 갈증을 없애준다. 또 열매인 죽실은 신명을 통하게 하여 몸을 가볍게 해준다고 한다. 대나무의 모든 생명력을 함축한 죽순은 다양한 영양분과 독특한 식감을 가진 고급 기호식품인 동시에 약용식품이다.
김인곤(수람기문 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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