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07 16:17
수정 : 2005.12.07 16:17
지난 주말 밤 한 방송사에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방송했습니다. 재미있게 봤습니다. 영화를 볼 때 궁금한 게 몇 개 있었는데, 그 뒤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영화 막바지에서 송강호와 김상경이 향숙이의 죽을 당시를 본 백광호를 찾아가 박해일 사진을 보여주며 “니가 본 게……, 이 얼굴이야?“라고 묻자, 백광호가 “불이…얼마나 뜨거운지 알아? 불이 얼마나 뜨거운데!”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왠 뜬금없는 대사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대사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어떤 분이 해석해 놓은 게 있더군요. 백광호가 어렸을 때 자기 아버지의 불륜현장을 목격하고 그 사실을 어머니한테 말하려다 이를 안 아버지가 백광호를 아궁이속으로 던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백광호 얼굴에 난 화상 자국도 그 때문이라고 하네요. 여하튼 백광호는 사실을 얘기하려 할 때 어릴 적 불에 덴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는 해석이었다.
그리고 영화 안에서 밤에 길 가던 여자를 덮치려고 논에서 뛰어나오는 범인을 연기한 사람도 박해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범인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박해일이 범인이 맞을 것으로 비쳐지지만 미국에 보낸 DNA 분석결과 범인이 아니라고 통보를 받게 되죠. “서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왔던 김상경의 희망을 저버린 채… 영화 포스터에는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라는 짤막한 한 마디가 적혀 있습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처럼 미치도록 진실을 알고 싶게 만든 사건이 최근 일어났습니다.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을 놓고 벌였던 황우석 교수팀과 피디수첩간의 진실게임이 그것입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많이 나왔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 피디수첩팀이 취재한 내용이 진실이라면? 피디수첩팀 사람들은 자신들의 진실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과 사람들이 얼마나 야속하겠습니까. 만약, 황 교수팀이 진실이라면? 피디수첩 주장에 동조하는 일부 사람들의 눈초리가 얼마나 신경 쓰이겠습니까?
이 정도로 덮어주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과학계에 맡겨 검증을 하던 또 다른 방법을 택하던 이 기회에 진실을 털고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실이 아닌 쪽은 피해를 준 쪽에 깊이 사과하고 이 사태를 치유해야 될 것입니다. 영화 마지막에 사업가가 된 송강호가 옛날 사건 현장을 우연히 보다 한 꼬마를 만나죠. 꼬마는 “이전에도 아저씨처럼 그렇게 사건현장을 본 사람이 있었다”고 하고, 송강호가 “그 사람 어떻게 생겼니?”라고 묻자, 꼬마는 “그냥 평범하게 생겼어요”라고 말합니다. 살인이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암시를 해놓은 것이겠지요. 어느 한 쪽에 대한 감정적 일방적 비난은 우리 스스로를 정신적 살인자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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