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2.18 13:47 수정 : 2005.12.18 15:08

5년쯤 전의 일이다. 물리학과 사람들을 위해 황우석 교수가 직접 동물 복제에 관한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이미 황우석 교수는 복제소 영롱이로 인해 상당한 인지도가 있는 스타급 과학자였다. 마침 세계적으로 몇몇 군데에서 인간 복제를 시도한다는 소문이 나돌던 때라 좋은 내용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질의 응답시간에 내가,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니 언젠가는 복제인간이 태어나지 않겠느냐라고 질문하자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대답했다.

“과학자는 그런 패륜적인 연구를 해서는 안 됩니다.”

동물 복제를 연구하는 분이라면 개인적인 욕심이 날 법도 한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강한 거부감을 보였던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비슷한 시기에 다른 대중 강연을 하다가 성적 비하 발언이 문제가 돼서 여학생들이 강하게 문제제기하자 황우석 교수가 즉시 사과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어찌 보면 별 일 아닐 수도 있지만, 지체 높은 서울대 교수님들 중에서 그렇게 학생들에게 사과까지 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 두 사건은 내가 황우석 교수를 존경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수의학과라는 부지불식간의 차별과 푸대접
국내파 박사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이뤄진 세계적인 성과

분야는 확연히 다르지만, 나는 황우석 교수를 아주 좋게 생각해 온 사람 중의 하나였다. 농대, 그것도 수의학과라는 부지불식간의 차별과 푸대접, 순수 국내파 박사라는 약점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젊지 않은 나이에 세계적인 성과를 이룩했으니, 같은 과학자의 길을 걷는 나로서 어찌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1승을 올릴 때마다 온 국민이 환호했던 이유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 박찬호를 바라보는 어린 야구 선수들의 부푼 꿈이 어떠할지, 그 가슴 벅참이 어떠할지 나는 황우석 교수를 존경하는 내 마음으로부터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12월16일 있었던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들 속에서 내 귀에 맴도는 몇 마디가 있었다.

“...이후 6개의 줄기세포가 추가 수립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사이언스>에 논문을 제출하였다.”

“돌이킬 수 없는 인위적인 실수가 있었다.”

자세한 전문적인 내용들은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기자회견문과 이어진 일문일답에서 나온 그 발언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은 조작이라는 것이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사실 자체로서도 충분히 충격을 받았지만, 나는 이 대목을 언급할 때의 너무나 태연한 그의 음성과 표정을 보고 들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과학은 11개중 단 1개의 거짓도 용납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11개 중에서 8개로 했으면 할 만큼 하지 않았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11개 중 단 1개의 거짓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 거짓이 얼마만큼의 비율이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짓이 있느냐 없느냐 자체가 과학연구의 생명이다. 국익과 수십조의 경제효과와 난치병 치료를 바라는 대다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매정해 보이겠지만, 그렇게 ‘매정’하고 엄격하고 또 객관적이어야 하는 것이 바로 과학인 것을, 인류가 수백 수천 년을 그렇게 ‘매정’하게 공들여 쌓아 온 금자탑이 바로 ‘과학’이라는 것을 어쩌겠는가. ‘패륜’의 정도로 보자면 누군가 인간복제를 했을 때의 패륜보다도 아마 더 패륜적인 행위가 과학자의 데이터 조작이다. 그 사실을 ‘자백’하는 순간의 한 과학자의 얼굴이, 그것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 과학자의 표정이 그렇게 담담하게 물 흐르듯 지나가 버리는, 그리고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12월15일의 그 풍경은 나에겐 너무나 낯설었다.

줄기세포가 한 개면 어떻고 3개면 어떤가 라는 그의 반문은 현문(賢問)이었다. 난치병 환자들에게는 단 하나의 성공한 줄기세포가 엄청난 희망인 것이 사실이듯이, 과학자들에게는 단 하나의 조작도 과학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 매우 안타까운 사실은 그렇게 조작의 전력이 있는 과학자의 성과를 이제는 세상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날 황우석의 기자회견은 과학과 과학자 사회에 대한 모욕을 넘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들의 ‘희망’에 대한 모욕이다.

지금 언론은, 그리고 세상은 도대체 복제된 배아줄기 세포가 몇 개나 있느냐, 수정된 줄기세포와 뒤바뀌었느냐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국민의 세금을 수백억이나 갖다 쓰는 한 국가의 대표 과학자가 논문조작을 ‘시인’한 사실이, 그 자체를 별로 문제 삼지 않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두고두고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된다.

황 교수는 이제 더 이상 과학자가 아니다

그래서 큰 목소리로 사법당국에 수사를 정중히 요청하는 그의 모습은 그다지 ‘정중’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말마따나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기껏해야 핵심 시료가 바뀐 것도 모르고 역사적인 논문을 썼거나 (논문 작성 전에 바뀌었을 경우), 바뀌지도 않은 진짜 줄기세포를 가지고서도 논문을 조작했다고 자인한 셈이니까 (논문 작성 후에 바뀌었을 경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황우석 교수는 이제 더 이상 과학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