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황우석 사태를 둘러싼 혼란과 의문, 분노, 대립이 심각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 또한 적지 않다. 이번 사태를 꼭 안좋게만 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단시간 안에 온 국민들의 바이오산업(BT)에 대한 이해가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지금은 국민 대다수가 배아줄기세포라는 말에 친숙해져 있지만, 이번 일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세계 최고라는 IT에 이어 BT 발전의 토양이 마련됐다고도 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황우석 사태가 설령 사기극으로 드러난다 해도 그 결정적 동기는 한국사회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사회의 자정능력과 내적 건강성이 어느덧 상당 수준에 올라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책만 할 일은 아니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해도 될 듯싶다. 요즘 국내 기업들이 단순한 경영성과에 그치지 않고 윤리성과 투명성과 같은 사회적 책임 이행에 대한 압력을 많이 받고 있지만, 이제 기업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이 그런 대세에 직면해 있음을 재확인했다. 또 하나의 성과를 꼽자면 언론의 필요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번 일을 겪다보니까, 뭐라 해도 언론은 있어야겠더라.” 최근 식사자리에서 한 대기업의 임원이 말을 꺼내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은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애국주의의 거센 불길 속에서도 MBC,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일부 언론은 진상규명을 위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물론 그 반대편에는 사실 확인을 하려는 노력 자체를 ‘반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마녀사냥을 시도했던 언론도 있다. 굳이 표현한다면 존재의 필요성이 있는 언론과 그렇지 않은 언론이 병존한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과연 ‘기자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근대 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데카르트는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본질을 ‘사유’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러면 기자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 기자는 ‘신문, 잡지, 방송 등에서 기사를 모으거나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자의 본질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내 나름대로 기자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기자는 의심하는 자”이다. 흔히들 언론의 역할은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고 그 의미를 올바로 진단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먼저 의심해야 한다. 그 살아있는 실례가 우리가 겪고 있는 황우석 사태이다. 지난 몇 년간 어느 누구도 황우석 교수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은 뉴스케이커들의 말이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게 마련이다. 그러나 기자는 아니다. 의심해야 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진실의 마지막 수문장’으로서. 흔히 기자들은 권위적이다, 잘난 척한다, 이기적이다, 자기중심적이다 등등의 비판을 받는다. 이것은 개인적인 인간성에서 연유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의심하는 직업적 특성이 반영된 측면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심에는 성역이 있으면 안된다. 설령 그것이 국익에 배치된다고 해도. 기자가 보도 방식이나 시기를 결정하는 데 국익을 고려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다. 일단 사실 자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 순서다. 국익을 내세워 사실 확인 노력 자체를 백안시하거나 제동을 거는 것은 곤란하다. 사실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도 관점에 따라 정반대가 될 수 있다. 황우석 사태를 파고들어 문제점을 보도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당사자는 물론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역풍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문제점을 공개하고, 잘못을 고치는 것이 보다 탄탄한 토대 위에서 우리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길이다. 경제분야 기자를 하면서도 그런 문제를 종종 겪는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공화국 논란이다. 문제를 파헤치고, 비판하는 것이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당사자인 삼성이 싫어하고, 삼성을 아끼는 여러 사람들이 비판한다. 심지어 삼성이 잘나가는 것에 배 아파하는 것이냐, 무책임하다, 삼성이 망해봐야 고마운 줄 안다 등등 극언까지 쏟아진다. 하지만 X파일 사태에서 나타나듯 삼성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중요성이 커질수록 삼성의 책임도 중요해진다. 삼성은 하루 속히 불법 편법적인 정경유착과 로비, 후진적 지배구조, 소유경영권 승계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풀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초일류기업이 될 수 있다. 갈릴레오는 수천년을 이어온 천동설을 뒤엎고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결국 종교재판정에 섰다. 갈릴레오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결국 자신의 소신을 꺾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재판정을 떠나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 기자는 그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이 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도 나는 의심한다”는 말을.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