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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1 17:29 수정 : 2005.12.21 17:29

이어지는 의혹에 ‘그래도 설마’ 했다. 이권, 종교, 이념의 공동 표적이 된 황우석 교수가 3중의 덫에 걸린 것이기만 바랐다. 그러나 난자 관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1막과 논문 조작을 시인한 2막이 상연되고 맞춤형 줄기세포의 존재를 심판할 3막만 남은 상황에서, 정부와 언론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줄기세포 영웅의 퇴장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이 황당한 드라마의 일부 관중은 맞춤형 배아줄기 세포의 제작 기술만 있으면 논문 조작을 용서할 수 있다는 배수진까지 치고 있다.

학술 논문의 표절과 조작 행위가 드물지 않은 우리 현실을 볼 때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의 원천 기술만 있으면 논문 조작 정도는 눈감을 수 있다는 현실 감각이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바깥세상 무서운 줄 모르다가 나라를 거덜 냈던 백 년 전 조선 조정의 아집과 억지도 이런 안일한 현실 감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발표된 11개의 맞춤형 줄기세포가 한 개면 어떻고 세 개면 어떠냐”면서 세계 표준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기자회견 장면을 보고 나는 백 년 전의 조선 왕조를 생각했다. 21세기 생명과학 전쟁을 우습게 보고 논문조작을 해서라도 맞춤형 배아줄기 치료 산업을 선점하겠다는 무지와 억지에서, ‘민족’과 ‘제국’이 충돌할 세계적 변혁을 중국 하나만 믿고 외면했던 조선 왕조의 무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태의 본질은 ‘성과주의에 매몰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아니다. 미래의 생명과학 전쟁에 대한 아무 비전도 없이 열광 모드로만 일관해온 정부와 정치권의 총체적 무능과 무지가 그 본질이다.

21세기 한국의 숙제는 ‘평화’로 끝나지 않는다. 국제정치적 미숙아로 남아 19세기의 주권 전쟁에서 패망한 역사를 교훈 삼아 21세기의 이권 전쟁에서 패하지 않는 것이 그 최종 과제다. 특히 맞춤형 줄기세포처럼 생명과학의 세계적 지배구조와 관련된 사업이라면 애초부터 엄격한 국가 감독으로 문제 발생을 막았어야 한다. 또 치료용 줄기세포의 상용화를 한국이 선도할 경우를 상정하고 생명산업의 세계적 판도 변화에 저항할 국제 공세에 대응할 전략도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했다. 정치의 수준은 무책임한 열정과 서슬 퍼런 구호가 아니라 현실을 통찰하는 비전의 폭과 깊이로 결정된다. 그러나 ‘붉은 악마’보다 더 붉게 달아오른 정부와 정치권은 언론이 제조한 ‘황우석 신화’의 정치적 이용에만 몰두했고, 경박한 사회적 열광 모드를 실속 모드로 전환하기는커녕 ‘3부 요인급 경호’라는 선정적 발상을 남발함으로써 진실해야 할 과학의 성취를 현란한 정치의 성과로 전환하기에 바빴다.

지금 당장 서울대의 조사 결과도 궁금하고 ‘미즈메디의 변심’을 둘러싼 소문의 실체도 궁금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분야 선도 기술 보유가 사실일 경우 혼란의 방치야말로 국제적 패배를 자초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시간을 다투는 이 연구를 이어갈 인적, 제도적 정비는 그래서 시급하다. 또 성체든 배아든 줄기세포의 광풍에 묻혀버린 여타 생명과학 분야를 재점검하고, 연구개발 성과를 국가적으로 방어할 수 있게끔 국제금융과 국제법 영역을 넘나드는 고도의 국가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생명과학의 성취를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의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하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세계화는 결국 이권 투쟁의 세계화다. 이런 현실 속에서 생명과학의 마지막 승부처는 국제정치다. 세계적인 이권 전쟁을 각오해야 할 이 전략의 수립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이제 정치의 승패는 이념이 아닌 정치적 비전의 수준이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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