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5 20:20
수정 : 2005.12.2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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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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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중의 건강과사회
황우석 교수팀 논문이 조작됐다는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발표를 보면서 문득 “한국 사람들은”으로 시작되는 광고가 생각났다. 광고의 한 편은 “한국 사람들은 밥을 빨리 먹는다”며, 이 힘이 일본에서 100년 걸렸던 자동차 산업을 우리나라에서는 30년 만에 성과를 이루게 했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을 때 커피가 다 나오기도 전에 커피 잔을 잡고 있는 성급함 때문에’ 한국이 발전한다는 광고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서울대 조사위 발표는 2005년 5월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가 나온 지 일곱 달, 세계줄기세포허브가 서울대병원에 들어선 지 두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개소식에 대통령까지 참석한 줄기세포허브로 세계의 많은 석학과 연구비가 몰리고, 이를 통해 엄청난 바이오산업이 이뤄질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실낱같은 희망만 남긴 채 세계적인 웃음거리로 남게 됐다.
많은 학자들은 황 교수팀의 부정에 대해 우리나라의 성급함과 성과지상주의 등의 문화를 꼽는다. 난치병 환자들의 생명이나 희망보다, 또 난자 제공과 같은 윤리적인 문제보다 ‘빨리빨리’ 결과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이 ‘빨리빨리’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앞당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난치병 치료와 같은 의학 분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의학은 새로운 기술이나 의약품이 나오면, 과거의 것에 견줘 환자의 생존율을 얼마나 높이는지, 환자가 내야 할 비용은 얼마나 줄이는지 등을 반드시 따져본다. 그 결과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기술이 더 낫다는 판단이 내려져야 임상에서 사용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의사이면서도 매일 새로운 것을 써야 하는 기자로서는 가장 힘들고 고민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40여일 동안 온 국민의 관심사였던 황 교수팀 관련 논란도 성과를 남겨야 한다. “국민들 대다수가 ‘테라토마’ 같은 단어도 알게 되는 등 과학지식 수준이 높아졌다”는 비꼼 대신 실질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이 반성은 가장 먼저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해야 한다. 국민들의 관심과 시간적 촉박함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철저한 검증으로 답해야 한다. 과거 서울대가 충분한 검증 없이 황 교수를 석좌교수로 임명한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김선종 연구원이 24일 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성탄절날 0시 조사위로 불러 새벽까지 조사하는 것 역시 ‘설령 범죄자라도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명제를 어긴 ‘빨리빨리’ 문화 아닐까?
김양중 의료전문기자·의사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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