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차르트의 요절을 초래한 질병들 |
"아직 나이가 젊은데도 침대에 들 때마다 아마도 내일엔 제가 더 이상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음악의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몹시 앓던 때인 1787년 4월 4일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짧은 삶을 암시하며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 들인다. 35세로 요절하기 4년전, 즉 31세 때의 일이다.
새해 1월 27일은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지 250주년이 되는 날이다.
프랑스 양대 주간지 '렉스프레스'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최신호에서 그의 삶과 죽음을 다룬 특집 기사를 대대적으로 실었는데 특히 '렉스프레스'에 게재된 요절한 원인에 관한 글이 눈길을 끈다.
모차르트는 평생 허약한 건강 상태에 시달렸다. 로빈스 랜던이 쓴 '모차르트의 마지막 해'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6세 때 처음으로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 병명은 연쇄상 구균 감염이었다.
이어 그는 급성 관절 류머티즘에 시달렸고 9세 때엔 장티푸스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으며 이듬해엔 류머티즘이 다시 도졌다.
15세 때인 1771년 간염으로 몸져 누웠고 잘츠부르크에서 빈으로 이사한 1781년에는 연쇄상 구균이 다시 한번 그를 괴롭혔다. 빈에서는 건강이 더욱 악화돼 심한 복통과 격렬한 구토로 기진맥진했다.
'모차르트의 병과 죽음'을 쓴 피터 데비이스에 따르면 모차르트의 병은 몸에 반점이 생기는 쇤라인-헤노흐 증세로 더욱 복잡해지는데 이 질병은 신장부터 훼손시킨다.
당시로선 진단 방식에 한계가 있었고 치료도 거의 효과가 없었던 만큼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편지에서 '피뽑기'로 나쁜 기운을 제거하라고 아들에게 '명령'하곤 했다. 피뽑기는 18세기에 있었던 치료 관행이었다.
1791년 7월 모차르트는 한 후원자로부터 레퀴엠을 작곡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던 그는 곧 수락했다.
모차르트의 전기를 쓴 인물이자 나중에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와 결혼한 니콜로스 니센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모차르트는 곧 죽음의 미사곡에 착수해 각별한 열정과 흥미를 갖고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육체적 불편은 점점 심해졌고 우울에 빠져들었다. 안색이 창백했으며 시선은 생기없고 슬퍼 보였다. 과로한 나머지 그는 결국 힘없이 무너져 침대로 옮겨졌다".
그해 10월 하반기에 모차르트는 혼미한 정신 상태에서 레퀴엠 작곡을 이어가던중 11월 19일 생애 마지막 외출을 했다. 식당에 가서 친구에게 한기를 호소한 뒤 집에 돌아오자 몸이 부어 오르기 시작했다. 신장 기능 장애로 물과 소금이 정체돼 생겨난 증세로 보인다. 이어 피부가 반점들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5일 0시 55분 모차르트는 아내 콘스탄체와 처제 조피, 의사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모차르트의 사후 그가 라이벌 음악가였던 살리에리에 의해 독살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특별한 근거는 없다.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 따르면 살리에리는 1823년 베토벤의 한 제자가 자신을 방문한 자리에서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명예를 걸고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성섭 특파원 leess@yna.co.kr (파리=연합뉴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