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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3 11:44 수정 : 2006.01.03 13:18

최근 황우석 사태의 와중에서 황우석 지지자들의 난자기증운동이 화제가 되었다. 황우석의 비양심적인 논문 조작이나, 미혼의 딸까지 데려온 난자기증자의 무모함과는 별개로 어쨌든 난자기증자들의 순수한 의도는 폄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배아복제줄기세포 연구에 난자가 필수불가결하게 필요한 것처럼, 의학의 다른 연구 분야에서도 인체로부터 얻어지는 시료가 필요한 경우가 매우 많다. 이러한 시료는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얻어질 때도 있고, 특정한 질병에 걸린 환자로부터 얻어질 때도 있다. 이러한 시료들 중, 가장 쉽게 얻어지고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이 바로 혈액이다. 다 알다시피 채혈은 난자기증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매우 쉽고 부작용도 없다. 하지만, 연구 분야에 따라서는 필요한 혈액을 충분히 얻기 힘든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왜냐하면, 필요한 만큼의 혈액을 기증해 줄 자발적 기증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환자의 혈액이 의학연구에 필요함을 설명해도, 많은 경우 자기 자신에게 해로울 수 있는 것으로 막연히 여겨 꺼림칙해 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필자는 현재 미국 의학연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보건연구소(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에서 의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필자는 바이러스 감염시의 인체의 면역 반응을 연구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환자 혈액을 필요로 한다. NIH에서 어떻게 환자의 혈액기증이 이루어지고, 심지어는 환자들이 임상시험의 대상자로 자원하는지 한번 살펴보자.

NIH 내에는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병원이 있다. 이 병원은 철저히 연구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연구에 필요한 환자들만을 진료하고 입원시킨다. 이러한 환자들은 미국내 각지의 일선 의사들에 의해 소개되어 모집되기도 하고, 광고를 통해 모집되기도 한다. 실제로 NIH 근처의 지하철 열차안이나 무료 신문에서는 심심치않게 이러한 모집 광고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모집된 환자들은 새로운 진단법이나 치료법의 임상시험 대상이 된다. 필자가 일하는 부서에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그 주에 우리 부서의 클리닉으로 오기로 예정된 환자들의 명단과 질병명이 적힌 명부를 돌린다. 그러면 각 연구자는 자신이 연구하기를 원하는 환자의 명단을 다시 클리닉으로 보내고, 환자가 오는 날에 해당 환자로부터 50 ml의 혈액을 얻어 실험을 하게 된다.


참고로 말하면, 한국에서는 환자로부터 10-20 ml 이상의 혈액을 연구용으로 얻기가 매우 힘들다. 만약 연구자가 어느 특정 환자의 혈액을 매우 많이 얻기를 원한다면 백혈구분리반출술(leukapheresis)을 시행하여 혈액 300-400 ml에 해당하는 만큼의 백혈구만을 선택적으로 얻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NIH 내에는 이렇게 얻어진 혈액을 클리닉에서 연구실로 배달하는 것을 전담하는 직원들도 있다. 이렇게 용이하게 환자의 시료를 얻을 수 있는 분위기는 한국에서는 꿈도 꾸기 힘든 것으로, 엄청난 연구비나 우수한 연구 인력과는 별도로 미국의 앞선 의학연구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축이다. 물론, 이러한 모든 임상시험과 혈액채취가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의 심의를 통과한 후에 시행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이렇게 환자들이 의학연구에 자발적인 참여자로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기증 문화가 한 몫 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을 지원해주는 제도인 것 같다. NIH의 경우에는 이러한 임상시험 참여자들이 연구에 협조하는 대신 이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치료해 준다. 미국처럼 의료비가 비싼 나라에서 이러한 혜택은 매우 큰 것으로, 환자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환자들의 자발적인 협조에만 호소할 것이 아니라, 정부나 의료보험관리공단이 주축이 되어 의학연구 협조환자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면, 우리나라 의학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혜택은 사례비의 형태보다는, 진료비에서 본인부담금의 경감 같은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더 이상적이다.

우리나라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 애국적으로 기여하고자 한다면, 고생스럽고 위험할 수 있는 난자기증보다는 혈액기증이 더 필요하면서도 쉽고 안전한 방법일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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