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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건’ 취재기자 방담
지난해 11월13일 제럴드 섀튼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의 결별 선언으로 시작된 황우석 교수팀의 <사이언스> 논문 조작 사건은 두 달 동안 한국 사회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많은 시민이 우려했던 대로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결론은 ‘줄기세포 없음’, ‘원천기술 없음’으로 나왔다. 이 사건은 실적지상주의, 맹목적 애국주의, 보여주기식 연구풍토, 연고주의, 권력지향적 행태 등 우리 사회의 고질병들을 또 한번 드러냈다. 취재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황 교수 사건이 던진 과제들을 진단해본다. 황교수, 언론 통해 연구성과 홍보하는데 남다른 노력
논문 허위 믿고 싶지 않았던 정부, 사태 덮는데 급급
언론 상업주의 행태 씁쓸…제보받고도 취재못한 사례도 보여주기식 연구풍토가 낳은 참사=황우석 교수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이벤트화하는 데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1999년 2월 세계 최초의 복제 젖소인 ‘영롱이’ 탄생을 알릴 때도 가까운 기자와 사전에 상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달포 뒤 복제 한우 ‘진이’가 탄생했을 때 그는 작명의 기회를 대통령에게 넘기는 기지를 보였습니다. 2000년 10월 백두산호랑이 복제 시도가 언론에 보도되기 전 그는 이미 ‘큰 건’이 준비되고 있다고 여러 기자에게 귀띔을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황 교수는 “북한에서 백두산호랑이를 복제해 달라고 맡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두산호랑이는 황 교수를 복제전문가로 국내외에 알려준 영롱이가 태어나기 전 1999년 1월에 서울대공원에 반입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안을 ‘극적’으로 꾸미는 데 일가견이 있는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2004년 2월 <사이언스> 논문이 나오기 전에도 몇 개월 전부터 황 교수는 “곧 큰 게 발표된다”고 언급했습니다. 논문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아 이를 들은 사람들은 궁금해야 했습니다. 이런 ‘사전 작업’은 언론들이 황 교수 연구 성과를 대서특필하도록 작용했습니다. 정부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극복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던 터여서 황 교수의 연구성과 발표는 ‘가뭄에 단비’였습니다. 정부의 보여주기식 성과주의 정책이 황 교수 연구에 대한 정밀한 검증을 가리게 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복제한우 ‘진이’ 작명 대통령에게 넘기는 기지도 발휘 정부의 책임 어디까지=정부도 크게 보면 ‘사기’당한 것이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애초 검증 없이 지원을 하고, 논문 조작 사건이 불거진 뒤에도 허술하게 대응하는 등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정부 쪽이 황 교수의 연구가 허위일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운 시점은 서울대의 조사위 구성 발표 즈음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정부가 그 전에 손을 마냥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알려지기에는 강성근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불러 제법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 조사는 전문가까지 동원했지만, 줄기세포 등 실물 연구성과에 대한 검증을 동반하지 못한 한계로 강 교수의 ‘오리발’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정부 쪽은 황 교수의 연구가 허위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방송> 피디수첩팀이 실시한 줄기세포에 대한 디엔에이 검사 결과라는 가장 명백한 검증 결과가 있었고, 이 검사에 대한 황 교수 쪽의 반론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지만, 정부는 그저 황 교수 쪽의 논리를 옹호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황 교수도 정부 쪽을 철저히 속인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난자 사용에 대한 연구윤리 위반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 쪽 관계자는 황 교수 스스로가 연구윤리 문제를 고백하고 넘어가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황 교수는 갑자기 피디수첩팀 쪽에 줄기세포를 건네주고 ‘검증 결과 이상이 없으면 연구윤리 문제를 보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돌아보면 정부 쪽이 ‘연구에 문제가 있으면 줄기세포를 내줬겠느냐’는 잘못된 인상을 갖게 된 대목입니다. 황 교수는 당시 “이틀이면 모든 문제가 정리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고 합니다. 정부 쪽 관계자는 진위논쟁이 터진 뒤부터 황 교수는 ‘통제’가 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이미 권력이 되어버린 황 교수를 정부 안에서도 견제하기 힘들었다는 겁니다. 진위논쟁 막판에 황 교수는 자신이 필요할 때만 정부 쪽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하고, 정부 쪽과 연락을 끊었다고 합니다. 국가정보원의 개입 흔적도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피디수첩이 유전자검증 결과에 대한 해석을 서울대 한 교수에게 맡긴 뒤 이 교수한테 국정원 쪽에서 번복을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황 교수가 미국으로 건너간 여성 연구원을 찾아달라고 해 국정원 시카고팀에게 연락이 간 적도 있습니다. 정부 검증없이 거액 지원 사건뒤에도 허술하게 대응 언론의 오락가락=황 교수 띄우기에 ‘원죄’가 있는 언론들은 논문 조작 사태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진실을 찾기보다는 시류에 따라 논조를 바꾸는 언론의 상업주의 보도행태는 이번 사건을 통해 또다시 드러났습니다. “와이티엔 보도가 나오고 난 뒤 피디들 때문에 문화방송이 안 된다고 비판했던 언론들이 줄기세포가 조작됐다는 게 밝혀지자 곧바로 문화방송 피디와 피디저널리즘 때문에 논문 조작을 밝혀냈다고 보도하더라”는 피디수첩 최승호 피디의 말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한 신문사 기자는 “황 교수가 옳다고 믿었고, 피디수첩, 프레시안, 한겨레 등이 공연한 흠집내기를 하고 있다고 봤는데,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애초 황 교수 논문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가 전달된 언론사는 문화방송만이 아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2004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이 모두 거짓이다”라는 내용의 제보를 받은 한 신문사 기자들이 황 교수가 지난해 5월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을 발표하기 며칠 전 그의 연구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황 교수팀이 줄기세포 보관용기들을 보여주자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평소 황 교수에게 우호적이었던 이 신문이 황의 추문을 파헤치기는 애초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 개입 흔적 곳곳서 드러나 유전자 검사한 교수에 압력도 인권 사각지대 ‘난자문제’=황 교수 사건은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에 얼마나 무관심한가를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황 교수의 윤리문제가 도마에 올랐을 때 여성의 몸속에 평생 써도 다 못 쓸 만큼의 난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난치병 치료를 위한 난자 채취가 무엇이 문제냐’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브로커들의 난자매매 문제를 질타하던 일부 언론마저도 황 교수 사태가 터지자 한 병원장의 말을 인용해 “어차피 사멸할 난자를 활용하는 것”이라며 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 여성은 “황 교수를 돕기 위해” “국익을 위해” 대입을 준비 중인 미혼의 딸과 함께 난자 기증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황 교수가 ‘천사’, ‘은인’이라고 치켜세웠던 한 난자 기증자는 그뒤 심각한 부작용을 겪으며 “미리 알았다면 달리 판단했을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말 ‘황우석 연구 성과의 경제적 가치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2015년쯤 황 교수를 비롯한 국내 줄기세포 연구진의 성과가 창출할 국부를 연간 최대 33조원으로 추정한 적이 있습니다. 천주교계 한 인사는 “서울대 최종 발표에서 2061개의 난자를 사용해 체세포 핵이식도 아닌 처녀생식 세포 한 개를 만들었는데, 33조원의 국부를 만들려면 도대체 몇 명의 여성에서 몇 개의 난자를 채취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한국생명윤리학회는 2004년 5월 황 교수팀에게 12개 항의 공개질의를 했습니다. 질문들은 연구에 쓰인 난자의 출처와 연구원 난자 기증 여부 등 ‘실질적인’ 문제였습니다. 당시 정부나 언론이 ‘윤리적 딴지걸기’로 보고 묵살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참변’을 막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대전고·서울 수의대 인맥 동원
‘고질병’ 연고주의 폐단 드러내 연고주의도 작용했다?=황 교수 사건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연고주의’ 폐단을 보여준 것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황 교수가 윤리문제와 관련해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과 논문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주변 인물들의 결별 선언이 잇따랐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어려움이 닥치자 ‘충신’들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황 교수팀의 변호인단은 황 교수가 나온 고등학교 선후배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황 교수팀의 한 관계자는 “황 교수팀의 변호인단이 모두 떠났고 이들만 남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피디수첩의 취재윤리 문제 취재와 보도를 주도했던 와이티엔의 고위 간부와 사장이 황 교수와 같은 지역 출신 인사들이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조사위원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했으며 과거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로 활동했다고 밝힌 ㅈ씨 역시 황 교수와 같은 고교 출신입니다. 서울대 수의대 학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공저자 가운데 끝까지 등을 돌리지 않은 이병천·강성근 교수는 ‘우병천 좌성근’으로 불리는 수의대 후배들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기도 합니다. 대전 특허청에서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관련 특허 담당자와 서울대 세포주은행의 세포 보관 담당자,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의 특허 담당자 등도 모두 수의대 출신인 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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