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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1 19:08 수정 : 2006.01.12 10:51

‘황우석 사건’ 취재기자 방담


지난해 11월13일 제럴드 섀튼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의 결별 선언으로 시작된 황우석 교수팀의 <사이언스> 논문 조작 사건은 두 달 동안 한국 사회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많은 시민이 우려했던 대로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결론은 ‘줄기세포 없음’, ‘원천기술 없음’으로 나왔다. 이 사건은 실적지상주의, 맹목적 애국주의, 보여주기식 연구풍토, 연고주의, 권력지향적 행태 등 우리 사회의 고질병들을 또 한번 드러냈다. 취재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황 교수 사건이 던진 과제들을 진단해본다.

황교수, 언론 통해 연구성과 홍보하는데 남다른 노력
논문 허위 믿고 싶지 않았던 정부, 사태 덮는데 급급
언론 상업주의 행태 씁쓸…제보받고도 취재못한 사례도

보여주기식 연구풍토가 낳은 참사=황우석 교수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이벤트화하는 데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1999년 2월 세계 최초의 복제 젖소인 ‘영롱이’ 탄생을 알릴 때도 가까운 기자와 사전에 상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달포 뒤 복제 한우 ‘진이’가 탄생했을 때 그는 작명의 기회를 대통령에게 넘기는 기지를 보였습니다. 2000년 10월 백두산호랑이 복제 시도가 언론에 보도되기 전 그는 이미 ‘큰 건’이 준비되고 있다고 여러 기자에게 귀띔을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황 교수는 “북한에서 백두산호랑이를 복제해 달라고 맡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두산호랑이는 황 교수를 복제전문가로 국내외에 알려준 영롱이가 태어나기 전 1999년 1월에 서울대공원에 반입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안을 ‘극적’으로 꾸미는 데 일가견이 있는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2004년 2월 <사이언스> 논문이 나오기 전에도 몇 개월 전부터 황 교수는 “곧 큰 게 발표된다”고 언급했습니다. 논문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아 이를 들은 사람들은 궁금해야 했습니다. 이런 ‘사전 작업’은 언론들이 황 교수 연구 성과를 대서특필하도록 작용했습니다.

정부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극복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던 터여서 황 교수의 연구성과 발표는 ‘가뭄에 단비’였습니다. 정부의 보여주기식 성과주의 정책이 황 교수 연구에 대한 정밀한 검증을 가리게 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복제한우 ‘진이’ 작명 대통령에게 넘기는 기지도 발휘

정부의 책임 어디까지=정부도 크게 보면 ‘사기’당한 것이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애초 검증 없이 지원을 하고, 논문 조작 사건이 불거진 뒤에도 허술하게 대응하는 등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정부 쪽이 황 교수의 연구가 허위일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운 시점은 서울대의 조사위 구성 발표 즈음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정부가 그 전에 손을 마냥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알려지기에는 강성근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불러 제법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 조사는 전문가까지 동원했지만, 줄기세포 등 실물 연구성과에 대한 검증을 동반하지 못한 한계로 강 교수의 ‘오리발’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정부 쪽은 황 교수의 연구가 허위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방송> 피디수첩팀이 실시한 줄기세포에 대한 디엔에이 검사 결과라는 가장 명백한 검증 결과가 있었고, 이 검사에 대한 황 교수 쪽의 반론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지만, 정부는 그저 황 교수 쪽의 논리를 옹호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황 교수도 정부 쪽을 철저히 속인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난자 사용에 대한 연구윤리 위반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 쪽 관계자는 황 교수 스스로가 연구윤리 문제를 고백하고 넘어가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황 교수는 갑자기 피디수첩팀 쪽에 줄기세포를 건네주고 ‘검증 결과 이상이 없으면 연구윤리 문제를 보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돌아보면 정부 쪽이 ‘연구에 문제가 있으면 줄기세포를 내줬겠느냐’는 잘못된 인상을 갖게 된 대목입니다. 황 교수는 당시 “이틀이면 모든 문제가 정리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고 합니다. 정부 쪽 관계자는 진위논쟁이 터진 뒤부터 황 교수는 ‘통제’가 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이미 권력이 되어버린 황 교수를 정부 안에서도 견제하기 힘들었다는 겁니다. 진위논쟁 막판에 황 교수는 자신이 필요할 때만 정부 쪽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하고, 정부 쪽과 연락을 끊었다고 합니다.

국가정보원의 개입 흔적도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피디수첩이 유전자검증 결과에 대한 해석을 서울대 한 교수에게 맡긴 뒤 이 교수한테 국정원 쪽에서 번복을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황 교수가 미국으로 건너간 여성 연구원을 찾아달라고 해 국정원 시카고팀에게 연락이 간 적도 있습니다.

정부 검증없이 거액 지원 사건뒤에도 허술하게 대응

언론의 오락가락=황 교수 띄우기에 ‘원죄’가 있는 언론들은 논문 조작 사태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진실을 찾기보다는 시류에 따라 논조를 바꾸는 언론의 상업주의 보도행태는 이번 사건을 통해 또다시 드러났습니다.

“와이티엔 보도가 나오고 난 뒤 피디들 때문에 문화방송이 안 된다고 비판했던 언론들이 줄기세포가 조작됐다는 게 밝혀지자 곧바로 문화방송 피디와 피디저널리즘 때문에 논문 조작을 밝혀냈다고 보도하더라”는 피디수첩 최승호 피디의 말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한 신문사 기자는 “황 교수가 옳다고 믿었고, 피디수첩, 프레시안, 한겨레 등이 공연한 흠집내기를 하고 있다고 봤는데,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애초 황 교수 논문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가 전달된 언론사는 문화방송만이 아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2004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이 모두 거짓이다”라는 내용의 제보를 받은 한 신문사 기자들이 황 교수가 지난해 5월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을 발표하기 며칠 전 그의 연구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황 교수팀이 줄기세포 보관용기들을 보여주자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평소 황 교수에게 우호적이었던 이 신문이 황의 추문을 파헤치기는 애초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 개입 흔적 곳곳서 드러나 유전자 검사한 교수에 압력도

인권 사각지대 ‘난자문제’=황 교수 사건은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에 얼마나 무관심한가를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황 교수의 윤리문제가 도마에 올랐을 때 여성의 몸속에 평생 써도 다 못 쓸 만큼의 난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난치병 치료를 위한 난자 채취가 무엇이 문제냐’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브로커들의 난자매매 문제를 질타하던 일부 언론마저도 황 교수 사태가 터지자 한 병원장의 말을 인용해 “어차피 사멸할 난자를 활용하는 것”이라며 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 여성은 “황 교수를 돕기 위해” “국익을 위해” 대입을 준비 중인 미혼의 딸과 함께 난자 기증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황 교수가 ‘천사’, ‘은인’이라고 치켜세웠던 한 난자 기증자는 그뒤 심각한 부작용을 겪으며 “미리 알았다면 달리 판단했을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말 ‘황우석 연구 성과의 경제적 가치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2015년쯤 황 교수를 비롯한 국내 줄기세포 연구진의 성과가 창출할 국부를 연간 최대 33조원으로 추정한 적이 있습니다. 천주교계 한 인사는 “서울대 최종 발표에서 2061개의 난자를 사용해 체세포 핵이식도 아닌 처녀생식 세포 한 개를 만들었는데, 33조원의 국부를 만들려면 도대체 몇 명의 여성에서 몇 개의 난자를 채취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한국생명윤리학회는 2004년 5월 황 교수팀에게 12개 항의 공개질의를 했습니다. 질문들은 연구에 쓰인 난자의 출처와 연구원 난자 기증 여부 등 ‘실질적인’ 문제였습니다. 당시 정부나 언론이 ‘윤리적 딴지걸기’로 보고 묵살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참변’을 막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대전고·서울 수의대 인맥 동원
‘고질병’ 연고주의 폐단 드러내

연고주의도 작용했다?=황 교수 사건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연고주의’ 폐단을 보여준 것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황 교수가 윤리문제와 관련해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과 논문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주변 인물들의 결별 선언이 잇따랐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어려움이 닥치자 ‘충신’들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황 교수팀의 변호인단은 황 교수가 나온 고등학교 선후배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황 교수팀의 한 관계자는 “황 교수팀의 변호인단이 모두 떠났고 이들만 남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피디수첩의 취재윤리 문제 취재와 보도를 주도했던 와이티엔의 고위 간부와 사장이 황 교수와 같은 지역 출신 인사들이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조사위원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했으며 과거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로 활동했다고 밝힌 ㅈ씨 역시 황 교수와 같은 고교 출신입니다.

서울대 수의대 학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공저자 가운데 끝까지 등을 돌리지 않은 이병천·강성근 교수는 ‘우병천 좌성근’으로 불리는 수의대 후배들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기도 합니다. 대전 특허청에서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관련 특허 담당자와 서울대 세포주은행의 세포 보관 담당자,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의 특허 담당자 등도 모두 수의대 출신인 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부분입니다.

방담 참여 기자 이근영 정의길 김양중 이정애 유선희(이상 사회부) 정혁준(여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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