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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전문가들 쓴소리
“87년 이후 쌓아 온 민주노조 운동의 자산을 깎아먹고 있다.” 민주노총의 지도부 선출을 둘러싼 극심한 내분에 대해 진보진영 안에서도 쓴소리와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 노동운동에 참여했거나 이를 지켜봐 온 인사들은 특히 민주노총 내부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무너지고 조직 내외부의 싸늘한 시선을 지도부 등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위기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민주노총의 분열 사태가 민주주의적 의식과 절차의 실종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의 세 차례에 걸친 대의원대회 무산에 이은 지난 10일 대의원대회 무산 사태 등은 민주노총 내부의 의사결정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냈다”며 “자신들 입장과 틀리다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노조운동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외부로부터 굉장히 고립돼 있다는 것을 내부에서는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런 사태가 이어진다면 내부로부터는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고, 외부로부터는 더욱 싸늘한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이사장은 “1998년에 노사정위 합의 내용의 수용 여부 결정 과정에서 내부의 민주적 절차들이 무시되고 폭언과 폭력적 방법들이 동원되기 시작했다”며 “이제 자신들의 요구와 맞지 않으면 힘으로 거부하는 게 정착됐다는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민주노총에는 자율적 제어능력이 없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승옥 전태일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은 “대의원들이 조합원 의견을 수렴해 이를 가지고 중앙에 가야 하는데, 지금 민주노총에서는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조합원들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며 “그러다 보니까 정파만 난무하게 되고, 비민주적인 방식이 동원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파들이 의미가 있으려면 각각의 견해가 조합원들에게 전파가 되고 동의를 받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그런 과정이 있다면 강제적 수단이 동원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생각 다르다고 폭력 자율적 제어능력 상실대의민주주의 고장나 대중지지 더 멀어져 분열
은근히 부추긴 정부· 자본에도 책임 민주노조운동의 결정체인 동시에 민주화운동의 상징이기도 한 민주노총의 내분은, 지난해 잇따라 불거진 노동계 비리사건과 맞물려 조직 자체에 치명타를 주는 것은 물론 양극화가 심화되는 한국 사회 전체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 운영위원은 “민주노총이 저렇게 가면 해체로 가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내년에 이뤄질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 등을 고려하면, 민주노총의 이런 사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배 연구위원은 “지난해 10월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패배는 노동계에 대한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과 위기를 확인해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공언해 놓고도, 기대만큼 이뤄낸 것이 없는 점도 대중적 지지를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됐다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민주노총의 위기나 민주노총에 대해 쏟아지고 있는 비판과 비난에는 지나친 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민주노총 내부 정파간에 심한 의견대립이 있고, 민주적 토론 훈련이 부족한 점이 있다”며 “하지만 이런 분열에는 이를 부추긴 정부나 자본의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그리 심각하게 보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 열릴 대의원대회에서 물리적 충돌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보수언론 등이 분열상을 트집잡아 민주노총에 대한 흠집내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민주노총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문제점을 짚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충고도 나오고 있다. 이 이사장은 “지금의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진단이나 대중 토론이 필요하다”며 “현재의 정파 구도를 어떻게 봐야할지, 정파들이 과연 대중적인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인지 등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운영위원은 “민주노총은 70~80년대 수많은 이들이 희생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이은 조직”이라며 “지도부는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하는데, 그러려면 무엇을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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